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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천고사설] 재상을 찾음

입력
2015.05.14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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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시대 위(衛)나라 문후(文侯) 때 단간목(段干木)이란 인물이 있었다. 문후가 그를 영입하기 위해서 찾아가자 단간목은 담장을 넘어서 달아났다. 노(魯)나라 목공(繆公) 때 설류(泄柳)라는 인물은 더 심했다. 목공이 그의 집을 찾아가자 문을 닫고 목공을 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맹자는 “이는 모두 너무 심한 것이니 군주가 찾아온 정성이 간절하면 만나주어야 하는 것이다(맹자 ‘등문공(藤文公) 하’)”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는 두 사람이 아직 신하가 될 마음가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공자는 달랐다. ‘논어(論語)’ ‘자한(子罕)’편에는 자공(子貢)이 공자에게 “여기 아름다운 옥이 있다면 나무상자(?) 속에 감추시겠습니까? 좋은 상인을 구해서 파시겠습니까”라고 묻는 대목이 나온다. 공자는 “팔아야지! 팔아야지! 나는 값을 기다리는 사람이다”라고 답했다. 공자는 세상에 나아가 도를 펼치고 싶었던 군자였다.

그러나 당시는 전쟁이 일상화된 혼란기라서 은거를 택하는 은자(隱者)들도 적지 않았다. ‘논어’ ‘미자(微子)’장에 나오는 장저(長沮)와 걸닉(桀溺)는 농사지으며 세상을 피하는 은자였다. 공자의 제자 자로(子路)가 나루터를 묻자 장저는 “공자라면 나루가 어디인지 알고 있을 것이요”라면서 가르쳐주지 않았다. 다시 걸닉에게 묻자 “물이 넘치면 흘러가는 것처럼 천하가 다 그런데 누가 이것을 바꿀 수가 있겠는가. 또 그대는 사람을 피하는 선비를 따르기보다는 세상을 피하는 선비를 따르는 것이 어찌 낫지 않겠는가”라면서 역시 나루터를 가르쳐주지 않았다.

자로로부터 장저와 걸닉의 말을 전해들은 공자는 크게 낙담했다가 “새, 짐승과 더불어 무리로 살 수 없으니 내가 이 사람들과 더불어 살지 않으면 누구와 더불어 살겠는가. 천하에 도가 있다면 내가 바꾸지 않으려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공자의 위대성이 여기에 있다. 천하가 이미 혼탁해져서 도를 행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도를 행하기 위해서 세상에 나가려고 했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공자 시대의 군주들은 자신을 패자(覇者)로 만들어줄 책사(策士)를 찾았지 세상에 도를 실현할 군자를 찾지 않았다. 그래서 공자는 뜻을 펼쳐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군주가 간절하게 인재를 찾는 것을 공묵사도(恭默思道)라고 한다. ‘서경(書經)’ ‘열명(說命)’ 상에 나오는 이야기다. 동이족 국가인 은(殷)나라 고종(高宗)은 선왕이 세상을 떠나자 정사를 신하들에게 맡기고 3년상을 치렀다. 그런데 3년상 후에도 말이 없자 신하들이 말씀을 내려달라고 청했다. 이때 고종은 신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부왕께서 내게 왕위를 주셔서 천하를 바로잡게 하셨으나 나의 덕이 선왕과 같지 못하므로 두려워서 말하지 못하고 공경히 삼가면서 묵묵히 도를 생각하고 있었는데(恭默思道) 꿈에 상제께서 내게 훌륭한 재상을 내려주셨다. 만약 이 사람을 찾아내면 그가 나를 대신해서 말을 해 줄 것이다.”

고종은 상제가 내려준 재상을 찾아 나섰으나 쉽게 찾지 못했다. 그러다가 뜻밖에도 부암(傅巖)이란 들판에서 성 쌓는 노역에 동원된 사람 중에서 꿈에서 본 사람을 찾아냈는데, 그가 바로 부열(傅說)이었다. 그래서 ‘성을 쌓는다’는 뜻의 판축(版築)은 미천한 곳에서 인재를 발탁한다는 뜻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부열의 사례는 ‘조선왕조실록’에도 자주 등장하는데, 대부분 임금에게 쓴 소리를 하는 인물로 많이 등장한다. ‘태조실록’ 4년(1395) 5월 간관(諫官) 이고(李皐) 등이 “은나라 부열이 고종에게 고하기를 ‘간쟁하는 말을 따르면 성군(聖君)이 된다’고 했다면서” 임금은 신하들의 간쟁, 즉 쓴 소리를 잘 들어야 한다고 했던 것이 이를 말해준다. 그러나 이는 고종이 부열에게 “아침저녁으로 쓴 소리를 하는 것으로 나를 보좌해달라”고 먼저 요청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임금에게 쓴 소리를 하는 것은 쉽지 않기에 임금에게 하기 어려운 일을 하도록 권면하는 ‘책난(責難)’이란 말이 나왔다. 정길(征吉)이란 말이 있다. 군자들이 한꺼번에 조정에 나오는 것을 뜻하는데, ‘주역(周易)’ 태괘(泰卦) 초구(初九)의 “서로 뒤엉켜 있는 잔디 뿌리를 뽑듯, 어진 동류들과 함께 나아오니 길하다(拔茅茹 以其彙 征吉)”라는 데서 나온 말이다.

새로운 총리를 뽑을 때인데, 하마평도 없이 조용하다. 부열처럼 초야에 묻힌 인재를 발탁하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최소한 대한민국 국민임을 부끄럽게 하지 않는 인물 정도라도 등장했으면 싶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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