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경남지사 소환 땐
금품수수 일시 등 묻지 않아
돈 포장 방식 등 추측만 난무
법조계 "기소 단계서 밝혀질 듯"
이완구(65) 전 국무총리에게도 검찰은 끝까지 ‘패’를 내보이지 않을 것인가. ‘성완종 리스트’ 검찰 특별수사팀(팀장 문무일 대전지검장)은 지난 8일 홍준표(61) 경남지사를 소환 조사하며 금품수수 일시와 장소를 끝내 묻지 않았다. 공소사실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에 대해 피의자 본인에게 확인 작업을 거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기존의 수사 방식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14일 이 전 총리의 소환 조사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이 높아, 검찰의 이례적 행보가 관심을 끌고 있다.
홍 지사와 이 전 총리에 대한 수사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돼 왔다. 상당수 주변인들이 수 차례 참고인 조사를 받은 뒤에야 검찰에 출석한 홍 지사와 달리, 이 전 총리의 경우 소환날짜가 정해진 12일까지 겨우 2,3명의 극소수만 검찰 조사를 받았다. 이 전 총리의 최 측근인 김모 비서관은 13일이 돼서야 검찰에 소환됐다. 또, 홍 지사는 언론을 통해 검찰과 ‘장외 공방전’을 계속 벌였지만, 이 전 총리는 지난달 27일 사퇴한 이후 줄곧 침묵을 지켰다. 특히 돈을 전달한 제3자(윤승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가 존재하는 홍 지사와는 반대로, 이 전 총리의 경우 성완종(64ㆍ사망) 전 경남기업 회장이 직접 돈을 건넸고, 이를 목격한 이들은 서로 다른 진술을 하고 있다.
그러나 두 사건은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유사한 지점이 있다. 바로 돈을 주고받은 당시 상황에 대해 사실관계가 대립하는 언론 보도가 난무하고 있다는 점이다. 홍 지사의 경우, 1억원이 전달됐다는 장소를 두고 의원회관 707호설(說)과 지하주차장설 등이 쏟아져 나왔다. 소환 이후 ‘의원회관 707호’로 어느 정도 특정되긴 했지만, 금품수수 시점은 ‘2011년 6월 무렵’이라고만 알려졌을 뿐 정확한 날짜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 있다.
이 전 총리 사건도 마찬가지다. 2013년 재보선 당시 문제의 3,000만원이 이 전 총리의 부여선거사무소에서 전달된 날짜와 관련, ‘2013년 4월 4일’과 ‘4월 7일’, ‘3월 28일’ 등으로 참고인 진술이 엇갈린다는 사실이 공개되면서 혼선이 생겼다. 검찰은 일단 ‘4월 4일’이라는 잠정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지만, 돈의 ‘포장 방식’은 아직도 불분명한 상태다. 지난달 15일 이후 ‘비타500 박스’에 담겨 전달됐다는 설과 ‘노란 봉투’ 형태로 건네졌다는 설이 동시에 등장했는데, 이후 “비타500 박스를 봤다”는 진술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노란 봉투설이 힘을 얻는가 싶었으나 이 전 총리 소환을 앞두고 새로운 변수가 튀어나왔다. 이번에는 “쇼핑백에 담아 3,000만원을 건넸다”는 성 전 회장 수행비서의 진술을 검찰이 확보했다는 내용이다.
검찰로선 서로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사건 관련자들이 ‘외부’에서 사실과 다른 말들을 쏟아내 수사를 지연시키거나 방해한다고 여길 법한 상황이다. 사실 검찰 수사는 최대한 보안을 유지하면서 진행되는 탓에 구체적인 수사 상황에 대한 보도가 항상 정확하진 않다. 대형 사건 수사에선 사실과 다른 ‘오보’도 심심찮게 일어나곤 한다. 하지만 동일 쟁점에 대한 ‘팩트’가 이렇게 판이하게 다른 보도가 쏟아져 나오는 경우는 분명히 이례적이다.
‘공여자 진술’ 확보가 불가능한 이번 사건에서 검찰은 이런 상황을 역으로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 수사팀 관계자는 “색다르고 예측하기 힘든 수사 기법들을 짜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수시로 토로해 왔다. 홍 지사에게든, 이 전 총리에게든 검찰이 그 동안 확보해 둔 핵심 증거들을 감추면서 최대한 늦은 시점에 ‘히든 카드’를 제시, 그들의 알리바이를 깨겠다는 게 검찰의 복안인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이 전 총리의 2013년 재선거 캠프 회계자료와 후원회 수입내역 등 A4용지 500여장에 달하는 자료도 13일에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확보했다. 홍 지사와 이 전 총리가 언제,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 금품을 수수했는지는 기소 단계에서 비로소 낱낱이 공개될 개연성이 크다는 게 법조계의 관측이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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