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 연금 협상이 표류하고 있다. 지난달 무산된 공무원연금 개혁안 처리를 위해 5월 임시국회를 소집했으나 아직 협상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서로 책임을 떠넘긴 채 공방만 하는 모양새다. 이러다가 이달 임시국회를 넘어 장기 미제로 남을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온다.
연금 개혁을 둘러싼 여야의 입장 차이는 지난 6일 합의안 처리 무산 이후 더 멀어졌다. 새누리당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인상 명기불가 입장을 아예 당론으로 확정했다. 이에 대해 새정치민주연합은 “합의 파기”라며 반발하고 있다. 당초 공무원연금 대타협기구 실무기구와 여야 대표 회동에서 합의한 수준보다 후퇴한 양상이다. 양측의 분위기도 험악해져 협상이 원점으로 되돌아간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은 그제 국무회의에서 정치권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였다. 박 대통령은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을 안 하고 빚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외면하면서 국민한테 세금을 걷으려고 하면 너무나 염치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처리 지연에 대해 “국민의 허리를 휘게 하는 일”“미래세대에 빚더미를 물려주는 일”이라고도 했다.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분리 처리를 요구하는 동시에 국민연금 보험료를 세금으로 규정하며 반대입장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박 대통령의 입장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죽 답답했으면 발언 도중 긴 한숨까지 내쉬었을까 싶다. 하지만 보건복지부 장관과 청와대 홍보수석에 이어 박 대통령까지 나서 직접 야당을 겨냥하고 나선 모양새는 매우 우려스럽다. 협상의 당사자인 여당의 힘을 빼고 야당을 자극하는 것이 연금 개혁안 처리에 얼마나 도움이 될 지 의문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조차 “협상가에게 재량을 주지 않으면 협상은 성공할 수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청와대가 자꾸 훈수를 두면 이에 끌려가는 여당이나 반발하는 야당이나 타협점을 찾기가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대통령과 청와대를 보면 여야 협상을 가로막아 공무원연금 개혁을 하지 말자는 것처럼 비칠 정도다.
여야는 지난 6일 본회의 무산 직전 원내대표간에 잠정합의안을 도출했다. 당시 새누리당 내에서 수용 의견이 많았으나 일부 친박계 의원들이 반대하자 지도부가 표결처리를 피해 거부됐다. 이런 기조에서 출발한다면 여야가 얼굴을 맞대고 진지하게 논의하면 합의를 이끌어내기가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여야가 조속히 협상 테이블에 앉아 대화를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청와대와 정부가 여야 협상에 개입을 자제하는 게 우선이다. 여야가 합의해 타협안을 낼 수 있도록 길을 터줘야 한다. 공무원연금 개혁안의 조속한 통과를 바란다면 그게 훨씬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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