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칸국제영화제의 황금종려상은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이 받기로 돼 있었다. 경쟁작인 ‘피아니스트’의 감독 로만 폴란스키가 몽니를 부리면서 수상 결과가 뒤틀렸다. 앞으로 절대 칸영화제에 오지 않겠다는 폴란스키의 선언에 영화제 관계자들의 마음이 흔들렸다. 결국 임 감독은 감독상을 받고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은 폴란스키에게 돌아갔다.”
한 영화인이 들려준 전설 같은 풍문이다. 영화제 내부에서 양심선언이 나오지 않는 한 진실을 확인할 길은 없다. 그래도 영화제가 돌아가는 방식을 안다면 귀가 솔깃해질 루머다.
칸영화제는 세계 영화계의 권력이다. 특히 예술영화 시장을 쥐락펴락한다. 칸이라는 배경을 업고 미지의 신진 감독이 세계로 진출하고, 거장은 거장으로서의 위치를 새삼 확인한다. 패기에 찬 젊은 감독도, 살아온 날보다 살 날이 훨씬 적은 노장 감독도 칸의 부름에 목을 맨다.
하지만 절대 권력은 없다. 칸영화제와 감독 사이에도 ‘밀당’이 존재한다. 영화제는 대가들이 항상 칸을 찾도록 갖은 예우로 세밀하게 관리한다. 베를린국제영화제, 베니스국제영화제 등 라이벌에게 최신 수작을 뺏기지 않기 위해서다. 임상수 감독에 따르면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이 2004년 칸영화제 비공식부문인 감독주간에 초청된 뒤 공식부문 프로그래머는 질책에 시달렸다고 한다. 좋은 영화를 가져오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임 감독은 이후 ‘하녀’와 ‘돈의 맛’으로 경쟁부문에 초대됐다. 영화제가 내놓는 대표 상품은 결국 영화이니 고개가 끄덕여지는 일화다.
13일(현지시간) 막을 올린 올해 칸영화제도 명장들의 집합소다. 이탈리아의 난니 모레티(‘내 어머니’)와 프랑스의 자크 오디아르(‘디판’), 일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바닷마을 다이어리’), 중국의 지아장커(‘산허구런’), 대만의 허우샤오시엔(‘섭은낭’), 미국의 구스 반 산트(‘시 오브 트리즈’) 등이 경쟁부문을 찾는다. 영화광이라면 듣기만해도 심장 박동이 거세질 이름들이다.
시상식이 열리는 23일 누군가는 환호하고 누군가는 탄식할 것이다. 영화제와 감독들의 ‘거래’를 둘러싼 소문과 뒷말도 나올 것이다. 아무리 구설이 있어도 빼어난 영화들끼리 다퉈서 나온 수상 결과라 그리 강한 의문을 제기하기도 어렵다. 난무하는 온갖 예상과 억측만으로도 칸영화제의 위상을 가늠할 수 있다.
올해 한국영화는 경쟁부문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3년 연속이다. 한국영화의 침체를 상징한다는 분석과 지나친 해석이라는 반론이 맞선다. 세계 영화인들이 모인 잔치의 중심에 서서 여러 소문과 풍문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만으로도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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