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타임 넘긴 생존자들
72시간 후 생존율 크게 떨어지지만
틈 찾아 숨쉬고 빗물 마시며 버텨
최대 18일 사투벌이다 구조되기도
기적을 만드는 3대 요인
물·음식 등 생명 유지에 필요한 환경
극한 상황 견딜 수 있는 신체 적응력
체념 않는 삶의 의지가 생사 갈라
●세계적 참사 속 장기 매몰자 생존 일수




방글라데시에서 재봉사로 일하던 열아홉살 소녀 레쉬마 베검은 2013년 4월 라나플라자 건물 붕괴 사고현장에서 17일 만에 구조됐다. 사고 당시 건물 2층공장에서 일하다 잠시 기도실에 들른 그는 한 순간 가로 30㎝, 세로 45㎝ 공간에 꼼짝없이 갇혔다. 베검은 건물 잔해 속에서 가까스로 가위를 찾아 콘크리트 덩어리에 깔린 머리카락을 스스로 끊어냈다. 형편이 어려운 그가 이날 도시락 대신 주머니에 챙겨온 건조식품과 물만이 유일한 생명줄이었다. 그는 부숴진 쇠 조각을 겨우 손에 쥐고 주위에 흩어진 잔해를 두드리며 구조를 요청했다. 인근에 함께 매몰된 동료 3명은 오래 전 숨을 거둔 상태였다.
지난달 25일 발생한 대지진으로 8,000명 이상이 사망한 네팔에서 12일 또다시 강진이 발생한 가운데, 앞선 참사에서 살아 돌아온 ‘기적의 생존자’들의 이야기가 다시 주목 받고 있다. 이들은 본능적으로 오줌을 먹거나 잔해 속 작은 틈을 찾아 숨을 쉬는 등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의지를 놓지 않았다.
콜라, 빗물만 마시며 10여일 버텨
아이티를 뒤흔든 2010년 1월 지진 현장에서도 기적은 일어났다. 수도 포르토프랭크의 무너진 학교 건물 더미에서 다를린 에티엔(당시 17세)이 15일 만에 구조된 것. 이 학교 옆에 거주하고 있던 한 주민이 집 잔해를 치우던 중 인기척을 듣고 구조팀에 알려 에티엔은 살 수 있었다. 에티엔은 눈을 깜박이며 폐허 더미에서 구조대의 도움으로 빠져 나온 뒤 연신 “감사하다”고 했다. 에티엔은 등교할 때 콜라를 챙겨 왔고, 이를 조금씩 나눠 마시며 버텼다. 통상 음식물 섭취 없이 72시간이 지나면 생명에 위협을 받기 시작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에티엔의 생존은 불가사의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2011년 일본 대지진 당시에도 파괴된 주택에서 지진 발생 10일 만에 아베 스미(阿部壽美ㆍ80)와 손자 아베 진(阿部任ㆍ16)이 극적으로 구조됐다. 잔해 더미에 갇힌 할머니는 넘어진 냉장고에 양 발이 깔려 꼼짝할 수 없었고, 손자가 이 냉장고에서 쏟아진 요구르트와 상한 음식물을 가져다 할머니에 먹여가며 함께 버텼다. 아베 군은 구조된 날에서야 지붕에 뚫린 구멍으로 얼굴을 내밀 수 있었고, 이 틈을 헤치고 올라 구조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최대 피해지인 뉴올리언스의 자택 다락방에서 18일간 구조를 기다려온 76세 노인 제럴드 마틴 사례도 있다. 그는 다락방에 홀로 갇혀 음식물은 입에도 대지 못한 채 떨어지는 빗물을 마시며 연명했다. 2008년 중국 쓰촨(四川)대지진 때에는 지진 발생 196시간 만에 건물더미 속에서 61세의 왕유충(王友瓊) 할머니가 구출되기도 했다.
신체 적응력과 의지가 기적 만든다
붕괴나 지진 등 참사로 매몰된 상황에서 인간의 생존 능력은 대체로 20일을 넘기지 못한다. 1995년 일본 한신대지진 당시를 살펴보면, 전체 구조자 중 지진 발생 후 24시간까지 구출된 이들은 80%, 72시간까지는 21%, 96시간까지는 5%였다. 극한 상황에서의 생존율은 외상 여부와 스트레스 등에 따라 크게 달라지지만 매몰된 사람의 경우 72시간 정도가 지나면 생존율이 크게 떨어진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하지만 ‘골든타임’을 넘겨 살아 돌아온 사례가 적지 않은 만큼, 네팔 대지진에서도 기적의 생환자들이 나타날 수 있다는 기대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기네스북에 따르면 물과 음식이 전혀 공급되지 않은 상황에서 가장 오래 생존한 기록은 1979년 오스트리아의 디아시 안트레아 마하베츠(18)가 세운 18일 432시간이다.
여러 생존 사례로 볼 때 매몰상태에서 생존 가능성을 높이려면 외상이 없어야 한다. 외상이 발생하면 에너지 소모량이 커지기 때문이다. 에티엔은 구조 당시 탈수 증세를 보일 뿐 외상은 없었고, 일본의 아베 할머니는 한쪽 다리에 동상을 입긴 했지만 큰 외상은 없었다. 물이나 음식물을 작은 양이나마 섭취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는 점도 공통된다. 특히 생명 유지에 필요한 수분 공급을 위해 오줌을 마시며 버틴 이들이 적지 않았다. 네팔 지진으로 수도 카트만두의 무너진 건물에 갇혔던 남성 리쉬 카날은 자신의 오줌을 마시며 수분을 공급, 82시간 만에 구출될 수 있었다. 쓰촨 대지진으로 매몰됐다가 구조된 남성 3명도 오줌을 먹고 75시간을 버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환경적 조건 외에도, 신체의 적응력이 크게 작용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극한상황에 놓인 사람에게 시간이 천천히 지나가는 듯한 일시적인 지각장애가 일어나면, 생체시계가 느려짐에 따라 대사도 저하돼 장기간 생존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당시 11일 만에 구조된 최명석씨는 “5일정도 지난 것 같다”고 말했고, 13일만에 구출된 유지환양도 시간이 그만큼 지난 것을 믿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영국 국제구조위원회(IRC)의 줄리 라이언은 최근 BBC를 통해 “생존에 가장 이상적인 조건은 갇혀 있긴 하지만 외부에서 산소 등이 공급되고, 다치지 않고, 물을 구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서도 “무엇보다 살려고 하는 의지가 뒷받침 돼야 한다”면서 “어떤 사람들은 운명이라고 체념해버리지만 어떤 이들은 계속 견뎌낸다. 이것이 생사를 가르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신지후기자 h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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