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1억 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홍준표 경남지사가 법망을 빠져나가려 기를 쓰는 모습이 연민의 정을 불러 일으킬 지경이다. 홍 지사는 기자회견 등을 통해 2011년 당대표 경선 당시 기탁금 1억2,000만원의 출처를 해명하는 과정에서 국회에서 받은 국회대책비 일부를 아내에게 생활비로 건넸고, 아내는 이를 비자금으로 조성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밝혔다. 홍 지사는 “변호사를 하는 유명한 판ㆍ검사 출신들은 10억~20억 원씩 벌었다”며 “집사람이 이때부터 나 몰래 별도 현금을 모아 두었다”고 했다. 그는 또 “2008년 여당 원내대표 시절 나온 대책비도 활동비로 쓰고 남은 돈을 생활비로 줬다”며 “아내가 2004년 8월부터 시중은행 대여금고에 이런 돈을 모아온 모양인데, 그 돈이 3억 원 가량”이라고 덧붙였다.
홍 지사의 말이 사실이라면 영락없이 공금횡령이다. 또 배우자 명의의 예금을 재산등록에서 누락한 것은 공직자윤리법 위반이다. 반대로 거짓말이라면 오히려 성 전 회장의 주장에 무게를 실어주는 셈이 된다. 얼핏 보면 딜레마에 빠진 것 같다. 하지만 검사 출신인 그가 이 정도를 모를 리가 없다는 게 상식이다. 당장 위험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피해 차라리 입증이 어려운 횡령죄나 공소시효(6개월)가 지난 공직자윤리법 위반으로 도덕적 망신을 당하는 쪽을 선택했다고 보는 게 설득력이 있다.
홍 지사의 이해할 수 없는 처신은 이뿐이 아니다. “(한나라당 때인)17대 총선 공천심사위원 시절 영남지역 의원이 국회 사무실로 찾아와 공천헌금 5억 원을 제시했다”며 “나중에는 20억까지 준다고 해서 그날 바로 그를 공천에서 탈락시켰다”는 것이다. 윤승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이 홍 지사에게 전달했다는 1억 원은 대수로운 액수가 아니라는 뜻이다. 새누리당에서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당 대표까지 지낸 사람이 제 살자고 물귀신처럼 당을 끌고 들어간다는 불만이 끓는다.
홍 전 지사는 한때 이탈리아의 부정부패 척결운동인 마니풀리테(Mani puliteㆍ깨끗한 손)를 주도한 안토니오 디 피에트로 검사에 비견돼 ‘한국판 피에트로 검사’로 불린 적도 있다. 그토록 당당해 보였던 그가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기 위해 부인과 당을 끌어들이며 구명에 전전긍긍하는 초라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더욱이 코너에 몰린 홍 지사를 위해 측근이 노골적으로 증거인멸과 회유를 시도한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 아무리 지역주민들에게만 책임을 지는 선출직이어도 이 정도면 어떤 기준으로 봐도 공직자 감으로 받아들이긴 어렵다. 사법 판단 이전에 그는 이미 정치적 생명을 스스로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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