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소득 3만달러를 넘어 5만달러에 가려면 공장 없는 서울은 문화를 근간으로 한 경제정책이 필요합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와 세빛둥둥섬 등‘감성 인프라스트럭처’로 이름 붙인‘디자인 서울’정책의 필요성은 절박한 심정에서 출발했습니다. 상당히 모험적인 투자였고, 욕먹을 각오도 했죠. 세빛둥둥섬을 (전시 행정의 표본으로)‘세금둥둥섬’이라고 부를 만큼 적대적 목소리도 높았습니다. 그러나 후회는 없어요. 시간이 지나 경제적 성과가 나타날 때 제대로 된 평가가 시작돼야 합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치권의‘무상급식’에 대해 거침없이 비판하면서도 DDP와 세빛둥둥섬에 대해 아직 평가하기엔 이르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주말 자녀와 함께 DDP나 세빛섬을 찾아본 시민이라면 그간 가져온 혈세 낭비와 디자인 논란의 선입견이 일순간 깨지는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DDP가 기획한 간송 문화전과 국민화가 박수근 특별전, 국내외 디자이너들의 디자인 이벤트 기획전 등 다양한 이곳 전시회엔 관람객들로 넘쳐난다. 또 복원된 서울 성곽과 맞닿은 지점에 펼쳐진 잔디정원의 2만5,550송이 LED 장미를 바라보며, 4만 5,133장의 알루미늄 패널로 구성된 독특한 외형 틈 아래로 펼쳐진 공간을 헤매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문화 놀이터에 온 듯 푹 빠져 든다. 여기에 매년 열리는 서울패션위크에서부터 하이패션 중의 하이패션인 샤넬의‘크루즈 컬렉션’ 패션쇼까지 열리다 보니 DDP는 패션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축제의 한 마당이다.
세빛섬은 또 어떤가. 관객 1,000만명 돌파를 앞둔 블록버스터‘어벤져스 2’의 촬영지가 된 후 주말이면 1만여 명이 찾는 한강 변의 관광 명소가 됐다. 세계 환경총회와 세계 헌법재판소 회의 등이 열린 컨벤션 센터이자 주말 밤이면 달빛 무지개 분수를 즐기며 식사하거나 여유롭게 차 한잔 마실 수 있는 낭만의 섬이다. 하지만 세빛섬은 민자투자사업이었는데도 세금 낭비의 전형이란 비난을 받고 오 전 시장이 업무상 배임 혐의로 검찰에 수사까지 받으며 지난 3년간 한강의 흉물로 방치됐던 기구한 운명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DDP를‘불시착한 해괴한 우주선’이라든지 세빛섬을‘돈 먹는 골칫거리’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다. 파리의 에펠탑도 처음엔 ‘수도 한가운데의 발기’, ‘쓸모없고 흉측한 타워’라는 독설을 들어야 했다. 에펠탑은 만국박람회를 위해 만들어져 30년 후에 철거하기로 한 임시 건축물이었다. 에펠탑이 파리를 대표하는 건축물이 된 것은 파리를 상징하는 예술 문화 경제 사회적 특징들이 에펠탑이란 상징물 아래 집약됐기 때문이다. DDP나 세빛섬이 서울을 대표할 랜드마크로 자리 잡기 위해선 세심하고 전략적인 큐레이팅 작업이 필요하다. 그 큐레이팅 기법은 바로 마이스(MICE) 산업에 있다. MICE란 회의(Meeting)ㆍ포상관광(Incentive tour)ㆍ컨벤션(Convention)ㆍ전시(Exhibition)를 포괄하는 융합과 창조의 플랫폼 산업. 단순히 한 번쯤 찾는 회의장이나 전시관이라면 그건 너무 싱겁다. 사람들이 늘 찾아가 감동을 받고 돌아가 다시 찾고 싶도록 끊임없이 즐거움을 제공해야 한다. 다양한 공연과 이벤트가 있는 엔터테인먼트 요소와 관광ㆍ레저의 시너지 효과까지 끌어내 영역의 경계를 허무는 융합과 창조의 콘텐츠로 가득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새로운 큐레이팅이 필요하다. 공간에 사물을 채워 넣는 큐레이팅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적 영역들을 접할 수 있고, 공간의 특성을 새롭게 만들며, 기대하지 못한 조우의 느낌을 들게 하는 교차로 같은 그런 큐레이팅이 필요하다. 오 전 시장은 “이들 장소가 놀이 시설이 아닌 산업 시설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이들 공간이 부가가치를 높이는 경제적 성과를 창출해야만 제대로 된 MICE 산업이 된다는 얘기다. 그것을 ‘유능한 정치인’박원순 시장이나 B2B 사업밖에 해보지 않은 세빛섬 사업자 효성이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을 지는 앞으로 서울 시민과 넘쳐나는 중국 관광객들이 판단할 몫이다.
장학만 산업부 선임기자 loca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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