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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에 읽혀야 좋은 희곡, 첫 완독할 때 연출 방향 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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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에 읽혀야 좋은 희곡, 첫 완독할 때 연출 방향 잡아"

입력
2015.05.12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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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보, 연극 '프로즌' 연출

내달 9일 프리뷰 공연 매진

김광보 연출가는 30여년 연극쟁이로 살며 스스로 쓴 희곡이 단 한 편도 없다. "각색을 한 번 한 적 있는데, 배우들이 그 작품 읽을 때 부끄러워서 다시는 안 쓰기로 다짐했다"며 "대본을 쓰지 않는 덕분에 역으로 대본에 함몰되지 않고 연출하게 됐다"고 말했다.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김광보 연출가는 30여년 연극쟁이로 살며 스스로 쓴 희곡이 단 한 편도 없다. "각색을 한 번 한 적 있는데, 배우들이 그 작품 읽을 때 부끄러워서 다시는 안 쓰기로 다짐했다"며 "대본을 쓰지 않는 덕분에 역으로 대본에 함몰되지 않고 연출하게 됐다"고 말했다.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감각적인 무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동선, 배우들의 물오른 연기. 조선반도에서 제일 잘 나간다는 연출가 김광보의 작품들은 ‘되는 연극’이 갖춰야 할 요소를 다 갖춘 듯하다. 지난 2월 공연한 ‘내 이름은 강’과 다음달 7일까지 두산아트센터에서 선보이는 ‘엠 버터플라이’, 원로 극작가 이강백의 복귀작 ‘여우인간’에 이어 김광보가 올해 네 번째로 선보이는 연극은 영국 극작가 브라이오니 레이버리의 ‘프로즌’. 그가 연출을 한다는 소식에 다음달 9일 프리뷰 공연은 티켓 오픈과 동시에 매진됐다.

11일 서울 삼선동 연습실에서 만난 그는 “지난해 초 우현주 맨시어터 대표한테서 대본을 받아 보고 바로 만들자고 했던 작품”이라고 했다. 요즘 그는 이 작품과 7월 초연하는 뮤지컬 ‘신과 함께’ 연습을 병행하고 있다. 대본 강독이 끝나고 배우들이 다음 연습 때까지 저녁을 먹으러 간 사이, 그는 김밥으로 끼니를 대신하며 인터뷰에 응했다.

“일단 대본이 굉장히 잘 짜였어요. 세 사람이 나오는 소품인데, 각자 모놀로그로 시작해 중간 지점에서 만나 사건이 일어나고 반전을 이루죠. 플롯이 아주 좋은, 절묘하게 잘 쓰인 대본이에요.”

소아성애자이자 연쇄살인범인 랄프가 그에게 딸을 잃은 엄마 낸시와 정신과 의사 아그네샤를 만나 겪는 심적 변화를 그린 이 작품은 1998년 영국에서 초연된 후 그해 TMA어워즈 작품상과 2004년 토이어워즈 최우수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딸 로라를 찾아 헤매며 실종어린이 찾기 단체까지 조직한 낸시는 수십년 후 랄프의 집에서 딸의 유골을 발견하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만났을 때의 케이스’를 모조리 찾아 읽은 후 아그네샤에게 랄프와의 만남을 요청한다.

“작품을 선택할 때 대본을 처음부터 끝까지 5~6시간에 걸쳐 읽어요. 제 식으로 말하자면 ‘완독’한다고 하는데, 좋은 희곡은 한 번에 읽힙니다. 안 좋은 희곡은 3장을 읽어내기가 힘들어요. 논리가 없어서.” 촘촘한 작품 해석으로 정평이 난 그의 대본은 밑줄 몇 개 친 것 외에는 메모조차 없을 정도로 깨끗했다. 김 연출가는 “첫 완독할 때 각 장면의 연출 방향을 다 잡는데, 중간에 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스스로 아동학대 피해자였던 랄프 역에는 치밀하게 계산된 연기를 선보인 박호산과 투박하고 즉발적인 연기의 달인 이석준이 더블 캐스팅됐다. “맨시어터 극단 배우 중 최상의 캐스팅”이라고 너스레를 떤 김 연출가는 “작품에서 가장 복잡다단한 인물이 낸시다. 배우(우현주)가 엄마이기 때문에 모성애의 본능을 잘 알고, 그 배우가 가진 끈기나 욕심이 낸시의 집요함과도 맞아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아그네샤가 히스테리를 부리는 비행기 안, 낸시가 딸을 그리며 오열하는 집, 랄프가 뒤늦게 죄의식을 느끼며 고통 받는 감옥 등 다양한 공간은 김광보식 미니멀리즘으로 구현된다. 그는 “의자 3개와 테이블 하나의 단출한 무대로 이 모든 공간을 나타내고, 바퀴 달린 의자로 능동적인 배우 동선을 만들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이 작품을 포함, 올해 그가 연출하는 작품은 8개, 내년에 연출할 작품도 두어 개 예약됐다. 소수의 스타 연출가들이 좋은 작품, 좋은 극장, 좋은 배우를 선점하는 바람에 연극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만든다는 지적에 대해 그는 “연출 22년째인 지금까지 한 작품 한 작품에 최선을 다 했다”고 에둘러 말했다. “국내 몇 안 되는 전업 연출가지만 연극이 제 생활 방편이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아요. 다만 작품 못 만들면 당장 의뢰가 안 들어오는 게 현실이죠. 그런 지적하는 분들께 정말 치열했냐고 되묻고 싶어요.”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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