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한 모임에서 만나게 된 남자와 3개월 정도 뜨겁게 사귀었어요. 하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처음엔 뜨겁게 불타 오르긴 했지만 성격 차이가 너무 나다 보니 도저히 더 사귈 수가 없겠더라고요. 그렇게 헤어지고 나서 2주쯤 되었을 때 술마시고 제가 먼저 연락을 하게 됐고, 그러다 예기치 않게 하룻밤을 보내게 됐어요. 성격이 맞지 않아 헤어지긴 했지만 잠자리 궁합은 꽤 좋은 편이었기 때문에 하룻밤을 그렇게 보내고 났더니 분위기가 묘하게 달라지더라고요. 그리고 그 날 이후로 우리의 관계도 묘하게 달라졌죠. 데이트는 제대로 하지 않지만 가끔 만나 관계를 가지는 쪽으로요. 감정적으로 소모될 일도 없고, 성적인 욕구는 해소할 수 있으니 이런 관계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이래도 되는 건가 싶기도 하네요. 기댈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남자와 평범한 연애를 하고 싶었는데 당분간 이렇게 외로움을 잊으면서 다음 사람을 기다리는 건 어떨까요?
A 물론 섹스란 좋은 거죠. 온몸이 뜨겁게 달아오른채로 내가 좋아하는 어떤 사람의 애무를 받고, 가장 솔직하고 적나라한 모습으로 몸의 대화를 나눌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서로 배려하고 끊임없이 대화해서 오르가슴에 이르게 되면, 평상시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쾌감에 빠져 깊은 행복감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오르가슴을 느끼는 순간 뇌 속의 1천억개의 세포는 놀라울 정도로 긴밀하게 반응하고 도파민 등 쾌락을 느끼는 호르몬을 강렬하게 분비한다고 해요. 그 결과 엄청난 강도의 쾌락을 느끼고, 상대방에게 매우 깊은 일치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고요. 당신이 그 남자와 헤어졌는데 결국 섹스만 하는 관계로 빠져들게 된 이유는, 단지 '잠자리 궁합이 좋아서'라는 말로는 설명하기가 부족해요. 너무나 강렬한 쾌감을 서로에게 선사한 사이이기 때문에, 연인 관계가 종료되었을지언정 몸이 기억하는 쾌감과 애착감이 두 사람 사이에 영향을 미쳤다는 설명이 더 적절하죠.
당분간은 성욕을 해소할 수도 있고, 또 연애하면서 일어나는 골치 아픈 일은 하나도 감당하지 않아도 되니까 이런 섹스 파트너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나쁘지 않느냐고 물으시는 거라면 제 대답은 예스예요.
네, 나쁘지 않아요. 사귀면서 서로 배려하고, 서로의 단점도 덮어주는 일이 얼마나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인가요. 그러면서 쾌감도 느끼고 외로움은 일시적이나마 잊을 수 있다면 이것만큼 효율적인 관계도 없는 거죠. 효율 면에서 보면 지지고 볶고 만나는 연애보다, 섹스 파트너가 훨씬 좋은 관계가 맞을 겁니다.
하지만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정말로 원하던 것이 무엇인지를 말이예요. 당신은 그저 효율이 좋은 관계를 원했던 것이 아니라, 기댈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남자와 평범한 연애를 하고 싶다고 말했어요. 그렇다면 기댈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남자를 알아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갖도록 다른 노력을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애매한 관계에 있는 전남친과 섹스를 하면 그런 눈이 만들어질 수 있는 걸까요? 더이상 믿을 수는 없는 남자라고 판단한 그런 사람에게 외로움을 해소하는 일이란 당신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 걸까요? 생각해보세요. 전 남친과 섹스파트너 관계가 되는 것은
일시적으로 외로움을 해소해주는 효율은 탁월하겠지만 당신이 애초에 원했던 것과는 아주 거리가 있는 것이잖아요. 내가 원하는 것이 A인데 B를 추구하는 일만큼 이상한 일도 흔치는 않은 것 같은데요.
당신이 지금의 이 애매한 관계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이 모종의 도덕적 죄책감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물론 그런 부분도 확실히 존재하긴 하죠. 하지만 당신을 이토록 고민하게 하는 건 죄책감보다는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지?'라는 스스로의 자각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맞닥뜨리는 대부분의 고민은, 결국 '내가 진짜로 원하는게 뭐지?'라는 중요한 질문과 맞닿아 있고 그것을 통해 분명히 우리는 성장하게 되니까요.
혼자 있는 것,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 주말의 화창한 햇살을 함께 즐길 사람이 없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 맞습니다. 저도 그것이 너무 두려워서 누구든 만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어요. 하지만 어떻게든 외로움을 해소해야겠다는 생각을 잠시 접고, 혼자만의 시간을 씩씩하게 보냈더니 그 때부터는 제 안의 무언가가 달라졌던 그 순간을 또렷이 기억해요. 혼자서 산책을 가고, 혼자서 많은 책을 읽고, 혼자서 영화를 보러 가면서 저는 제가 어떤 상태이고 또 어떤 사람과 함께 있어야 행복할 수 있는지를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었어요. 쉽지 않겠지만, 당신도 언젠가는 혼자의 아름다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으면 해요. 아무나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에는 정말 '아무나'가 나타나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잘 관통하는 사람은 오히려 자신의 행복과 가까운 지점에 있는 사람을 만날 확률이 커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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