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활동·미생물 연구·수학 신동…
남다른 이력 신입사원들 눈길
"엉뚱한 괴짜를 뽑는 게 아니라
한 분야서 쌓은 성취를 증명해야"
기존 채용방식으론 상경계열 쏠려
다양한 경력 인재 채용 기회로
이정훈(27)씨는 원래 꿈이 가수였다. 동네의 한 가요제에서 자작곡으로 입상을 하는 등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소질이 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대학에 입학 후 교내 음악제에서 두 번이나 대상을 받으며 결심을 굳혔다. 밴드를 결성해 보컬로 활동하고 기획사의 문을 두드리기도 했다.
이진복(24)씨는 대학시절 미생물에 빠져 지낸 적이 있었다. ‘지렁이가 땅에 살면 건강한 토양’이란 말이 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런 토양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보겠다고 미생물과 지질 등의 연구에 매달렸다. 결국 비슷한 비료를 만드는데 성공해 A기업이 주최한 ‘휴먼테크 논문대상’에서 장려상을 받았다.
조영승(24)씨는 어린 시절부터 ‘수학 신동’으로 통했다. 한국수학올림피아드 등 각종 경연대회에서 대상 금상을 싹쓸이했다. 고등학교를 조기 졸업하고 대학 전공도 수학을 택했다.
전혀 다른 경로의 삶을 살아온 세 사람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작년 하반기 현대카드·현대캐피탈 신입사원 공채를 통과한 80명, 그 가운데 ‘스페셜 트랙(Special Track)’이란 채용 관문을 넘어선 이들이란 점이다.
스페셜 트랙은 일반적인 심사요소 대신 지원자가 집중한 특정 부문에서의 역량과 성취 등을 검증해 인재를 채용하는 방식이다. 학계 주요지에 논문을 기고한 적이 있거나 세계적인 광고제에서 입상한 경력이 있는 사람, 영화 연출이나 소설을 출간한 경험이 있는 사람 등 특별한 역량을 갖춘 이들을 우대하겠다는 것이다.
현대카드는 지난해 처음 이 제도를 도입해 인턴사원 총 54명 중 9명을 스페셜 트랙으로 선발했다. 이중 최종 합격한 5명의 신입사원은 글로벌 토론대회 수상자, 마케팅이나 창업 등의 특기생들이었다.
올해 선발된 3명의 경력 역시 대부분 카드사의 본업과는 거리가 멀다.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주로 음악에 빠져 살았거나(이정훈), 기계공학(이진복)이나 수학(조영승) 등 금융업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겹쳐지는 대목이 있다. 자신이 좋아한 분야에 열정을 다했던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조영승씨는 “취업과 관련해 준비한 게 별로 없었고 학점도 좋지 않았다”며 “한 가지를 열심히 해봤다는 점 자체를 높이 산 것 같다”고 말했다. 최고가 아니더라도 최선을 다해 살아왔는지, 당장 능력이 뛰어나지 못해도 열정을 다해 살아온 점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얘기다.
채용 과정도 이런 점을 검증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스페셜 트랙이 추구하는 특별함은 엉뚱함이나 단순한 기발함, 괴짜가 아니다”라며 “지원자는 자신이 해당 분야에서 진지하게 쌓아온 역량과 성취를 말이 아닌 구체적인 내용으로 증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철저한 검증을 위해 관련 분야에 소양이 있는 이들을 면접관으로 배정한다. 이번 채용 과정에서는 바둑 특기생으로 자신을 소개한 지원자가 있어 바둑을 좋아하는 임직원을 급히 수소문해 면접에 들어가게 하기도 했다. 이정훈씨는 “두 명의 면접관과 30분씩 다섯 번의 면접을 봤다”며 “음악을 좋아한다고 하니 장르나 가수에 대해 집요하게 물어보더라”고 했다. 이진복씨는 “살아온 과정과 관심사를 묻는 질문들이 대부분을 차지했다”고 말했다.
특이한 경력의 인재를 선호하는 것은 다양성을 중시하는 회사의 철학과 관련이 깊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기존의 방식대로 채용을 하면 스펙이 좋은 지원자나 상경계열 등에 유리할 수 밖에 없다”며 “스페셜 트랙 방식으로 채용된 이들이 외부자의 시선을 통해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본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이종교배’의 원칙은 채용 후에도 적용되고 있다. 이들은 스페셜 트랙으로 입사했지만, 오토영업지원팀(이정훈), 세무팀(이진복), 캐피탈리스크관리팀(조영승) 등 전혀 다른 분야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스페셜 트랙이 별도의 전형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세 명 모두 스페셜 트랙으로 입사한 사실을 이번 인터뷰를 통해 처음 알았을 정도다. 조영승씨는 “(스페셜 트랙으로 합격했다는 얘기를 들으니)일반적인 방식으로 합격하기 힘들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며 “모든 직원을 이렇게 뽑기는 어렵겠지만 다양한 관심사를 존중한다는 점에서 이런 제도가 확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김정화 인턴기자(이화여대 중어중문학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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