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자ㆍ목회자들 고민 책으로
“세상에 신이 어디 있습니까. 다 헛소립니다. 있다면 배 안에서 그렇게 손이 문드러지도록 살려달라고 애원한 아이들을 왜 내버려뒀답니까.”
지난달 경기 안산시에 마련된 세월호 희생자 정부합동 분향소. 교회 관계자들이 위로 차 유가족들을 방문한 가운데 한 희생자 학생 아버지가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8일 스스로 생을 등진 채 발견된 권모(58)씨였다. 당시 만남을 회상하던 한 목사는 “그 고통스러운 물음 앞에 어떤 위로도 할 수 없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종교계가 세월호 사태가 신학에 남긴 물음과 씨름하고 있다. 처절한 자기반성과 고민을 담은 책도 잇달아 나왔다. ‘헤아려본 세월’(포이에마)은 “거대한 슬픔 앞에 할 말을 잃은” 성서학자, 신학자, 목회자 등 11명 필자들의 탄식과 다짐을 담은 책이다. 국가와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견지했지만, 초점은 신학에 주어진 무거운 물음에 답하는 것이었다. 고민의 끝은 ‘왜’에 대한 답이 아니라, 희생자를 감싸 안아야 한다는 교회의 방향성이었다.
신학ㆍ철학박사인 김영봉 미 와싱톤한인교회 목사는 “고난의 현실 앞에서 ‘왜’라고 묻는 것은 당연한 반응이나 우리에게 ‘왜’라는 질문에 답할 능력은 없다”며 “송두리째 세계관을 무너뜨리는 고난을 당한 이에게는 같이 아파하고, 분노하고, 울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며 묵묵히 위로하는 일이 신학이 할 일의 전부라고 규정했다.
일부 목회자들의 망언과 신학적 미화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앞서 일부 목사는 ‘대한민국 전체를 회개시키기 위해 아이들이 희생됐다’는 식의 설교로 논란을 빚었다. 백소영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외래교수는 “이런 망언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라며 “희생자들을 제대로 기억하는 것이 기독교 공동체와 시민사회가 함께 해야 할 실천”이라고 했다.
차정식 한일장신대 신학부 교수는 “세월호 희생을 죄를 속량하기 위한 제물인 것처럼 어설프게 미화하는 오류에 빠지거나, 얼토당토않은 모방적 폭력논리로 강변을 늘어놓아선 안 된다”고 경계했다. 그는 툭하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이들이 “이기심을 수시로 성찰하면서 인간으로 이 땅에 존재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부지런히 살피는 노력이 절실하다”며 그래야 “이러한 끔찍한 재난에 개입한 인간의 사악한 본성을 직시하고 그것을 넘어서려는 발버둥이라도 칠 수 있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남겨진 자들의 신학’(동연)은 장로교, 감리교, 성공회 등 세월호 사태 진상규명 현장에서 만난 여러 교파 신학자들이 참여해 내놓은 책이다. 이들은 조직이나 기구 없이 SNS 등을 통해 광화문광장에 모였고 “유족과 함께 하자”는 177명의 신학자 서명을 받아냈다. 이들 중 24명의 저자가 1박 2일간 모여 세월호 이후 신학을 구상했다.
책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세월호참사대책위원회가 기획했다. 세월호 참사가 남긴 신학적 키워드를 고통, 분노, 기억, 동행 등 네 가지로 압축하고 이 문제의식을 신학적 체계로 분석했다. 저자들은 “세월호 경험 앞에 오만하고 무력했던 신학과 결별해야 한다”며 “조장되는 망각에 맞서 기억하고 함께 우는 공감의 신앙”을 이 시대 교회가 나아갈 방향으로 꼽았다.
권진관 성공회대 신학과 교수는 “세월호는 하나님이 예정해 놓은 사건이 아니라 우리의 잘못이, 우리 사회의 구조가 예정해 놓은 참사라고 말해야 한다”며 “돈의 담론, 맘몬(물질적 탐욕)의 담론에 의해 지배되는 이 사회에 교회가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교회가 권력의 이야기를 채택할 것이 아니라 약자의 이야기를 채택해 세월호에 대한 정의롭고 진실한 이야기라 나타나게 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전현식 연세대 신과대 교수는 “예수의 십자가의 고통과 절규를 기억한다는 것은 역사 안에서 억울하게 희생당한 자들의 고통과 분노를 기억해야 한다는 뜻”이라며 “희생자의 고통과 분노를 은폐하려는 구조적 악에 저항하고 그들의 정당한 이야기를 역사 현장 안으로 되살려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