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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돈과 예술

입력
2015.05.11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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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것의 좋은 점은 돈을 벌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글을 써서 부자가 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므로 돈 때문에 글 쓰기를 선택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글쓰기뿐 아니라 예술분야는 대체로 마찬가지다. 누군가 이런 돈벌기와 거리가 먼 분야에 투신하기로 마음 먹었다면 어떻게 돈을 마련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서둘러 시작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돈은 예술가라고 해서 덜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중적이지 않을수록 예술작업은 돈을 향한 목적을 강하게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돈과의 관련성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돈을 벌겠다는 목적이 희미한 예술분야일수록 돈이 더 많이 드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후원자가 필요하다. 후원자는 귀족이라도 좋고, 국가여도 괜찮고, 소비자 개인들이라도 상관없다. 그 후원자들은 자신이 후원하는 예술가나 예술작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도 상관없다. 후원자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이 애정하는 예술가나 예술작품을 소유하고자 하는 환상을 충족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예술가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신의 비전을 실현하는 것이다. 그 비전을 누군가 이해해주기를 바랄지도 모르지만 그 이해자와 후원자가 일치해야 할 필요는 없다. 많은 예술가들이 이해자로 자기 자신을 놓는다. 훌륭한 예술가일수록 까다로운 이해자이다. 그들은 대체로 거의 항상 만족하지 못한다. 그래서 좋은 예술가들은 많은 경우 성격파탄자들이다.

하지만 이런 성격파탄자들이라도 스스로가 부자이거나 로또에 당첨되지 않은 이상, 후원자의 눈치를 끊임없이 봐야 한다. 많은 재능있는 예술가들이 이 상황을 잘 헤쳐나가지 못해서 망하고 만다. 그러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자신의 위치를 똑바로 볼 줄 알아야 한다. 예술가라는 값비싼 존재양식을 유지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한지, 그 돈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마련할 근성이 근성이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손에 쥐게 된 돈을 효도라든가 내집마련 따위에 사용하는 대신 자신의 작업에 쏟아 부을 수 있을 정도로 스스로가 충분히 비현실적인 인간인지도 따져봐야 한다.

물론 내집 마련과 예술작업은 병행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성공적으로 병행되는 경우 예술가는 직업인으로서의, 월급쟁이로서의 예술가의 세계, 즉 소시민적 세계에 갇히기 쉽다. 갈수록 예술가들의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는 정부나 공공기관과 같은 후원자들은 예술가들을 이런 소시민의 세계에서 빠져 나오기 힘들게 만든다. 대기업들이 정규직을 뽑듯이, 출신학교와 포트폴리오, 실적을 종합한 이력서를 통해서 바늘귀만한 기회를 던져주고, 그러면 바늘귀를 충분히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스스로를 충분히 축소시킨 예술가들만 살아남는다. 해서 이런 종류의 후원을 먹고 사는 예술가들은 사회성이 좋은 직장인의 느낌이 강하고, 그들이 내어놓는 작품은 회의시간의 멋진 프레젠테이션 같다. 장르에 상관없이 요즘의 예술이 재미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런 관료제적 후원의 세계에 염증이 나서 시장으로 도망친다고 해서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후원자로서의 소비자 대중은 매혹적인 만큼 위험하다. 그들은 쉽게 열광하고 쉽게 버린다. 쉽게 추앙하고 쉽게 짓밟는다. 이런 변덕쟁이들을 오랜 시간 제정신으로 버텨내는 것은 어렵다. 그렇다면 어디로 가야 하는가? 물론 답은 없다. 예술은 실용적인 가치를 생산해내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의 모호한 가치를 알아주는(혹은 그렇다고 오해하는) 후원자들에게 기생하여 생명을 이어나갈 수밖에 없다. 예술의 이런 기생성을 찬미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무용함과 의존성으로 꽉 찬 그 세계가 의외로 강하고 끈질긴 생존력을 지니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구차하고 시시해지는 가운데에서도 사멸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말이다.

김사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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