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첼랴빈스크는 우랄 산맥 동쪽 기슭을 흐르는 마이스강 연안에 있는 인구 100만명을 갓 넘는 아담한 도시입니다. 19세기 말 시베리아 철도가 개통된 이후 상업과 교통의 중심지로 발달하기 시작해 현재 우랄 공업 지역의 중심도시로 발전을 거듭해 온 곳으로 러시아에서는 내실 있는 도시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2013년엔 우주에서 약 1만톤에 달하는 운석 조각이 떨어지는 천재지변으로 화제가 된 적도 있지만 이 곳 사람들은 그다지 특별할 것도, 자랑할 것도 없이 조용하고 묵묵히 생업에 종사하며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자그마한 마을을 이번에 강타한 건 운석이 아닌 태권도입니다.
12일부터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를 개최하는 첼랴빈스크는 모처럼 일상 외의 ‘특별한 일’을 치르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10일 오전 러시아 첼랴빈스크 공항이 갑자기 떠들썩해졌습니다. 대회 자원봉사자 수십 여명이 태권도복을 입은 마스코트 곰, 사자와 함께 손바닥 모양의 응원도구를 두드리며 취재진을 포함한 대회 관계자들을 환대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로선 다소 독특한 풍경이었지만 그만큼 첼랴빈스크가 이번 대회를 준비한 열과 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거리 곳곳에는 물론이고 미디어와 대회 관계자를 실어나르는 버스에는 대회를 알리는 홍보 문구로 가득 차 있습니다. 20세 미만의 남녀 학생들이 주를 이루는 자원봉사자들은 곳곳에 투입돼 선수단과 관계자, 취재진을 돕고 있습니다. 대회가 열리는 경기장과 각종 부대시설 외에 취재진이 묵는 숙소에도 이른 오전시간부터 늦은 밤까지 상주할 정도입니다. 이들은 영어와 함께 간단한 한국말도 구사합니다. 선수단과 관계자, 취재진 등 가장 많은 인력을 파견한 태권도 종주국 한국의 위상을 그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세계태권도연맹 관계자는 “많은 대회를 다녀봤지만 이렇게 열성적으로 대회를 준비한 나라는 드물다”고 말합니다.
러시아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때는 태권도 선수단이 단 한 명도 없을 만큼 태권도와는 거리가 먼 변방이었습니다. 그러나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동메달을 2개를 획득한 이후 이제는 남녀 공히 세계대회 톱10 안에 포함되는 실력으로 일취월장했습니다. 그렇게 적극적으로 태권도와 인연을 쌓은 러시아는 2013년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세계태권도연맹(WTF) 집행위원회에서 브라질과 베트남을 제치고, 이번 대회 개최지로 선정되었습니다. 당시 브라질과 베트남은 각 5표에 그쳤고, 러시아는 무려 20표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첼랴빈스크가 지리적으로도 여러 국가가 참가하는데 어려움이 없고, 국가 차원의 지원이 확보되었다는 점에서 표심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러시아의 한 작은 도시에 불고 있는 태권도 열풍은 갑자기 닥친 신기한 일은 아닙니다. 첼랴빈스크(러시아)=성환희기자 hhs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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