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ㆍ전도연ㆍ수지ㆍ조정석 등 도약
충무로는 부침이 심하다. 영화사들의 흥망성쇠는 빠르다. 2000년대 중반 충무로의 영화공장을 자부했던 싸이더스픽쳐스의 위세를 최근 찾을 수 없다. 시네마서비스를 운영하며 대기업 자본과 맞섰던 강우석 감독의 힘도 예전만 못하다. 20년 동안 영화를 꾸준히 만들며 정체성을 이어온 명필름은 드문 경우다. 충무로를 지킨 시간만큼 많은 인재들이 명필름 영화를 거쳐서 한국영화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성장했다. 특히 흥행에 실패한 재능 있는 감독이 명필름과 작업하며 스타 감독으로 거듭나는 경우가 많아 ‘재활 전문 영화사’라는 특이한 별칭도 따랐다.
명필름을 통해 ‘재활’한 대표적인 영화인은 박찬욱 감독이다. 데뷔작 ‘달은… 해가 꾸는 꿈’과 ‘삼인조’가 흥행에 실패했던 박 감독은 ‘공동경비구역 JSA’로 영화인생의 도약대를 찾았다. 600만 관객이 ‘JSA’를 관람해 흥행 감독이 됐고 이후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등을 만들며 세계적인 감독으로 뛰어올랐다.
임순례 감독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 이용주 감독은 ‘건축학개론’으로, 정지영 감독은 ‘부러진 화살’로 흥행의 꿀맛을 봤다. 무명이었던 김지운 감독은 명필름에서 ‘조용한 가족’을 만들며 신고식을 치렀고 ‘반칙왕’과 ‘장화, 홍련’ 등으로 충무로의 주요 감독이 됐다. 국내 역대 최고 흥행 영화인 ‘명량: 회오리 바다’의 김한민 감독도 명필름과 손잡고 ‘극락도 살인 사건’으로 데뷔했다.
명필름 영화를 통해 이름을 알린 배우도 적지 않다. 전도연은 ‘접속’으로, 수지와 조정석은 ‘건축학개론’으로 영화배우 이력을 본격 시작했다. 무명시절 황정민은 ‘와이키키 브러더스’와 ‘YMCA 야구단’ 등에 출연하며 영화 관계자들의 눈도장을 확실히 찍었다.
심재명, 이은 명필름 공동 대표는 ‘발굴’이라는 단어의 사용을 거부했다. “명필름이 아니어도 잘될 수밖에 없었던 감독과 배우들”이라는 거다. 이 대표는 “어떤 배우와 어떤 감독이 명필름 때문에 잘 됐다는 말은 결국 그분들 때문에 우리가 잘 됐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는 “박찬욱 감독, 수지, 전도연처럼 저평가됐던 감독과 배우와의 작업은 항상 시너지 효과를 내서 좋았다”고 덧붙였다.
명필름을 스타 산실로 만든 것은 결국 스타 배우나 유명 감독의 이름 값보다 영화의 완성도에 더 방점을 찍으려 한 제작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심 대표는 “어떤 제작자는 남녀 스타를 먼저 떠올리며 제작에 들어가나 우리는 남들이 눈여겨보지 않은 가능성을 찾으려 했다”고 말했다. 그는 “조정석은 좋은 영화를 만나면 훨씬 더 인정받을 수 있는 배우라 생각했다”며 “‘건축학개론’으로 영화계에 진입해 스타가 돼 아주 기쁘다”고 밝혔다.
명필름은 독립영화계의 스타 박정범 감독의 차기작을 준비 중이다. 박 감독은 2011년 ‘무산일기’로 세계적인 독립영화제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타이거상을 수상했다. 이 대표는 “박 감독과 ‘지슬’의 오멸 감독 등은 한국영화의 미래를 이끌 영화인”이라며 “(독립영화계의) 새로운 인재들과 영화를 만드는 동시에 (상업적인) 기획 영화도 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라제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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