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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필름' 쌍두마차, 뜨거웠던 20년을 이야기하다

입력
2015.05.10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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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학교-아트센터 개관식이

영화 개봉할 때 보다 더 떨렸다"

기획영화女와 독립영화男의 만남

영화 40% 수익 '족집게 제작사'

"흥행ㆍ작품성 둘 다 안 놓치고파"

"김기덕의 '섬' 첫 예술영화라 우려"

이은(왼쪽) 심재명 명필름 공동대표는 "위기에 놓인 한국영화를 구할 인재를 키워야 한다는 절박감에 명필름영화학교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두 사람 뒤편으로 명필름이 제작한 36편의 포스터를 한데 모은 걸개그림이 보인다. 파주=고영권기자youngkoh@hk.co.kr
이은(왼쪽) 심재명 명필름 공동대표는 "위기에 놓인 한국영화를 구할 인재를 키워야 한다는 절박감에 명필름영화학교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두 사람 뒤편으로 명필름이 제작한 36편의 포스터를 한데 모은 걸개그림이 보인다. 파주=고영권기자youngkoh@hk.co.kr

스타들의 부동산 재테크는 이제 뉴스도 아니다. 누가 강남에 빌딩을 사서 수십억원의 차익을 남겼다는 소식에는 스타가 재테크 능력도 탁월하다는 칭찬이 따른다. 돈이 성공의 절대적 지표가 된 사회에서는 당연한 평가일 것이다.

심재명 이은 명필름 공동대표는 달랐다. 100억원을 들여 명필름영화학교와 명필름아트센터를 지난달 30일 개관했다. 경기 파주시 문발동 출판도시. 건물이 위치한 장소는 부동산 투기와 한참 거리가 멀다. 심 대표는 “전부 빚”이라며 애써 의미를 축소했지만 큰 돈을 빌릴 수 있는 신용도 어마한 자산이다.

부부는 명필름 설립 20주년을 맞아 5년 전부터 영화학교와 아트센터 건설을 추진했다. 영화학교와 아트센터는 유명 건축가 승효상씨가 설계한 건물 2개 동에 있다. 연면적 7,941㎡ 안에 극장과 공연장, 전시실, 북카페, 강의실, 기숙사, 명필름 사무실, 식당 등이 들어찼다. 작지만 갖출 것은 다 갖춘 문화공간이자 일터이고 배움터다. 출판도시의 새 명물이 될 만하다. 지난 7일 오후 부부를 이곳에서 만났다.

심 대표는 1987년 서울극장 기획실에서 일하며 충무로에 발을 디뎠다. ‘결혼이야기’의 광고문구 ‘잘까, 말까, 끌까… 할까?’ 등을 만들며 영화계의 유명 인사가 됐고 명기획을 차려 영화 기획과 홍보 일을 했다. 제도권에서 영화 일을 시작한 심 대표와 달리 이 대표의 출발점은 충무로 밖이었다. 독립영화제작집단 장산곶매에서 ‘파업전야’ 등을 만들며 한국영화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 심 대표는 “우연히 처음 봤을 때 호감과 호기심이 있었다”고 했다. 여자친구와 헤어진 지 얼마 안 된 이은 대표에게 안동규 영화세상 대표가 “마케팅 잘하는 여자 있는데 한번 만나볼래”라고 제안하며 두 사람의 교제는 시작됐다.

94년 결혼한 둘은 95년 명필름을 설립했고 96년 창립작 ‘코르셋’을 내놓았다. 이후 ‘접속’과 ‘조용한 가족’ ‘해피엔드’ ‘공동경비구역 JSA’ ‘섬’ ‘바람난 가족’ ‘와이키키 브러더스’ ‘YMCA야구단’ ‘그때 그사람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 ‘건축학개론’ 등 36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이 대표는 지난달 30일 열린 명필름영화학교ㆍ명필름아트센터 개관식에서 “36편의 영화를 만들며 수 많은 행사를 했는데 오늘이 가장 떨린다”고 말했다.

-기획영화로 유명한 여자와 독립영화계 남자의 만남이라니…

심재명 대표=둘이 사귈 때 영화평론을 하던 한 친구가 결혼해서 뭐 먹고 살려고 그러냐며 걱정을 해줬다. ‘파업전야’로 이용배 장산곶매 대표가 수배됐던 시절이었다. 운동권 영화와 내가 직접 연결은 돼 있지 않았으나 장산곶매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이 있었다.

-20년 동안 36편을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큰 위기는 무엇이었나?

이은 대표=결혼의 위기는 없었던 것 같다(웃음). 심하게 싸우거나 그만 살자 한 적은 없었다. 회사도 운이 좋은 편이었다. 다만 강제규필름 등과 합병해 만든 MK픽쳐스에서 2007년 분리돼 나오면서 사무실 규모를 30분의 1로 줄였을 때 좀 힘이 들었다. 담배도 끊고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하는 시기였다.”

심=당시 우리처럼 합병을 해 우회상장한 영화사들이 결국 안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자기 콘텐츠를 다 팔아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분리를 통해 우리는 우리 콘텐츠를 지킬 수 있었다. 그래도 힘든 시기였다. 사무실 임대료를 월 2,500만원에서 월 130만원 규모로 줄이면서 새롭게 출발해야 했다.

-96년 ‘코르셋’을 만들기 전 이미 빚이 5억원이었다는 말이 있었는데.

심=맞다. 걱정을 하면서도 영화사가 돌아가야 하고, 좋은 영화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진 빚이니 어쩔 수 없었다.

이=빚 때문에라도 영화를 안 할 수 없었다. 심 대표가 홍보로 5,000만원 벌어오면 내가 영화 기획한다고 썼다. 돈도 못 벌면서 그래서 미안했다. 명필름은 돌파구였다. ‘코르셋’이 흥행에 실패했어도 다행히 두 번째 영화 ‘접속’이 빚을 다 갚아줬다. 지금까지 직원들 월급 걱정 안 해보고 영화를 했으니 행복하고 감사하다. ‘접속’으로 20억원을 벌었다. 10억원 벌면 건물 하나 사고 영화 그만 두는 게 현명하다고 말하던 때였다.

심=20억원? 10억원이다(웃음). (이 대표는) 항상 나보다 더 도전적이고 주도면밀하긴 한데, 구체적으로, 현실적으로 책임을 지는 일은 내가 많이 했다.

강의실 극장 공연장 등이 들어찬 명필름영화학교(왼쪽)와 명필름아트센터(오른쪽) 건물. 고영권기자 youngkoh@hk.co.kr
강의실 극장 공연장 등이 들어찬 명필름영화학교(왼쪽)와 명필름아트센터(오른쪽) 건물. 고영권기자 youngkoh@hk.co.kr

-가장 의견 대립이 심했던 작품은 무엇인가?

심=크게 이견을 보인 경우는 없다. 김기덕 감독의 ‘섬’은 처음으로 하는 예술영화라 우려를 많이 했다. 내 기준으로 관객도 별로 안 들었다. ‘섬’ 스태프를 위한 개봉 축하 파티를 하는데 내가 앓아 누워서 못 갔다. 첫 회 상영 관객이 25명이었다. 그때까지 그런 실패를 경험하지 못해 충격이 컸다.

이=속이 시커멓게 타 들어가도 표정을 감추는 게 제작자인데 심 대표가 그럴 자신이 없었는지 파티에 나오지 못했다.

심=‘섬’이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을 받은 뒤 이 대표가 무척 기뻐했다. 당시 사무실 앞에서 야채 파는 분한테 차창을 내린 뒤 뜬금 없이 “우리 ‘섬’이 베니스 가요”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면 의견이 완벽하게 일치한 영화?

이=누군가 하겠다고 했을 때는 나름 의미도 있고, 자신이 잘할 수 있고, 잘 될 것 같은 영화다. ‘해피엔드’의 경우 드라마가 세지 않아 잘 안 될 것이라는 의견을 내가 냈지만 심 대표가 잘 될 것이라고 해서 (묵묵히) 도왔다. 결혼 10년이 지나니 그런 구분조차 이젠 없어졌다.

심=주도하는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고 위험을 줄이는 식으로 상의를 해왔다. 그래도 영화사 설립 초반에는 내가 상업적인 면에서 치열하게 따졌다.

명필름이 제작한 영화는 40% 가량이 수익을 남겼다. 돈을 버는 한국영화가 매년 20%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수익률이다. MK픽쳐스에서 분리해 명필름으로 재출발한 뒤에는 ‘우생순’ ‘시라노; 연애조작단’ ‘마당을 나온 암탉,싹’ ‘부러진 화살’ ‘건축학개론’이 연달아 흥행했다. ‘충무로의 품질보증마크’라는 명예로운 수식에다 ‘족집게 제작사’라는 말까지 따라붙었다. 최신작 ‘화장’을 제외하고 명필름이 35편으로 모은 관객은 4,300만명이다.

-5편이 연달아 흥행할 때의 기분은 어땠나?

심=새 출발하면서 앞으로 만드는 영화는 흥행이든, 작품성이든 둘 중 하나는 결단코 놓치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다. ‘우생순’ 이후 굉장히 치열하게 살았다. 연달아 흥행이 되니 여유가 생기고 자만도 생겼다. 최근 3편이 연달아 흥행에 실패했다.

이=돈을 벌면 의미 있는 영화를 하게 되고 흥행이 안 될 수가 있다. 우리가 느슨해진 것 같지는 않다. ‘카트’나 ‘화장’은 나름 최선을 다했다. 예전에는 흥행과 의미가 함께 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힘든 시기가 됐다.

-20년 동안 사건사고가 많았을 텐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이=영화 현장이 위험한데 다행히 큰 사고는 없었다. ‘JSA’와 ‘바람난 가족’ 같은 영화 때문에 상처 받은 JSA전우회원이나 집배원 노조원들이 항의할 때가 가장 힘들었다. 영화 제작의 책임감도 생각하게 했다.

심=‘JSA’ 개봉했을 때 JSA전우회에서 (JSA대원이 북한 군인과 불법적으로 접촉하는 것으로 그렸다며 항의하기 위해) 100여명이 몰려왔을 때 정말 무서웠다.

-외동딸이 올해 영화 전공으로 대학에 입학했다고 들었다. 부모의 영향이 컸나?

심=중앙대 영화과 연출 전공이다. 이 대표의 후배다. 이 대표가 좋아한다. 딸이 어떤 공부를 하든 상관 없었다. 엄마 아빠가 맨날 영화 이야기하고 집에 굴러다니는 게 시나리오이니 영화를 선택한 듯하다. 영화는 우리가 모르는 분야가 아니니까 마음은 놓였다.

-영화학교와 아트센터 설립은 어떻게 계획했나?

심=2010년 명필름 설립 15주년 행사를 치르면서 20주년에 맞춰서 만들어야겠다고 구체적으로 생각했다. 원래 지난 2월 완공하려다 늦은 것이다. 계획했던 것을, 약속했던 것을 지켜내는 게 명필름의 정체성이다.

이=15주년 때 감사한 마음으로 고민을 하며 시작한 사업인데 사실 이 공간은 우리에게 돌파구다. (대기업 계열 대형 투자배급사) 몇 군데로부터 시나리오 통과가 안 되면 영화를 못 만드는 현실을 보며 우리가 꼭 영화를 해야 하나 생각했다. 우리가 좋은 영화를 만들어도 영화제작을 지속할 수 없는 상황이 오면 뭘 해야 할까 고민을 했다.

-건물을 지으면서 5년 동안 큰 장애나 변수는 없었나?

심=딱히 큰 걸림돌은 없었다. 다만 지난해부터 ‘관능의 법칙’과 ‘카트’ ‘화장’이 연이어 흥행에 실패해 혹시 좋지 않은 영향을 줄까 심적으로 부담이 됐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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