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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소비자를 우롱하는 가격제들

입력
2015.05.10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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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홈쇼핑을 자주 보게 된다. ‘오늘 이 시간이 끝나면 절대 만날 수 없는 조건’ 이라는 쇼호스트의 자극적인 멘트나 ‘마감 임박’이라는 자막을 볼 때면 왠지 그 상품을 사지 않으면 나만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홈쇼핑 채널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처음에는 누가 홈쇼핑에서 상품을 사나 했는데 이제는 홈쇼핑을 통해 구매한 제품들이 하나 둘 늘고 있다. 최근에도 홈쇼핑에서 살 만한 상품을 하나 발견하고 ARS를 통해 결제를 하려다가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TV 화면에는 계속 24개월 무이자할부라는 자막이 반짝거리고 있는데 ARS에서 나오는 멘트는 일시불로 결제하는 경우 얼마가 할인되어 할인 가격이 얼마가 된다는 설명이 나왔다. 비교적 고가의 상품으로 이번 기회에 장만하면 24개월 무이자로 할부구매 할 수 있다는 것을 계속 강조하면서 설명을 했기 때문에 당연히 무이자 할부로 이해하고 있었는데 실상은 그렇지가 않은 것이다. 결국 상품대금을 일시불로 결제할 때 할인해 준다고 하는 부분만큼이 할부이자가 되는 셈이다. 원래 상품 가격에 24개월치의 이자를 덧붙여 이것을 마치 상품가격인양 소개를 하고 이걸 24로 나누어 월 할부금을 계산해서 안내를 하면서 24개월 무이자할부라고 했던 것이다. 결국 나는 속은 기분이 들어 구매를 포기했다.

최근 조삼모사(朝三暮四)라는 것이 딱 어울리는 요금제 광고를 봤다. “지금 당장…구입 비용 절감” 또는 “현명하게 구매하는 방법” 이라고 광고하고 있어 광고하는 대로 사면 마치 상당히 저렴하게 구매하는 현명한 소비자가 되는 것처럼 느끼게 했다. 하지만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이게 바로 이게 조삼모사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조삼모사라는 말은 옛날 중국의 송나라에서 어떤 사람이 원숭이를 좋아해서 많이 기르다 보니 먹이를 많이 줄 만한 형편이 안 되어 먹이를 줄이려고 생각해 낸 묘책에서 나온 말이다. 이 사람은 먼저 원숭이들에게 아침에는 먹이를 세 개씩 주고 저녁에는 네 개씩 주겠다고 했더니 원숭이들이 몹시 화를 내서 그러면 아침에 네 개씩 주고 저녁에 세 개씩 주겠다고 제안을 하자 원숭이들이 다들 좋아 했다고 한다. 아침에 먹이를 세 개 먹고 저녁에 네 개를 먹나 아침에 네 개 먹고 저녁에 세 개 먹나 결국 하루에 7개의 먹이를 먹는 것이지만 먼저 네 개를 준다는 말에 원숭이들이 현혹된 것이다.

이 요금제가 그렇다. 최신 스마트폰을 살 때 초기에는 할부금을 전혀 내지 않거나 일부만을 내게 하고 그 기간이 지나면 나머지 할부원금을 분할해서 납부하도록 설계된 요금제이다. 소비자로 하여금 마치 싸게 구매하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하지만 단지 언제 내느냐의 차이일 뿐 결국 내야 하는 할부원금은 동일한 프로그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고는 마치 부담 없이 싸게 살 수 있는 것처럼 소비자를 현혹해 가입을 유도하는 것이다.

할부구매 대신 리스를 하라는 광고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일반 소비자들에게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리스제도가 마치 할부구매보다 더 싼 것처럼 광고를 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비교기준에 따라 비용은 달라진다. 가격을 비교하고자 할 때는 그 기준이 동일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기준을 설정하고 이에 따라 비용을 비교하고 또 광고를 하고 있다. 소비자가 대출을 받을 때나 상품을 할부로 구매할 때 원금과 이자를 갚아 나가는 방식에 따라 실제로 드는 금융비용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당장 나가는 돈이 얼마냐에 더 관심을 가지는 경향이 있으며 이러한 소비자의 속성을 이용해서 판매자들은 다양한 가격제를 내놓는다. 인터넷사전에서 조삼모사의 활용례를 보면 ‘간사한 잔꾀로 남을 속여 희롱함을 이르는 말’이라고 되어 있다. 잔꾀로 소비자를 우롱하는 광고는 삼가야 한다.

최현자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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