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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커룸처럼… 캠핑장처럼… "그래, 난 개성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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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커룸처럼… 캠핑장처럼… "그래, 난 개성파야!"

입력
2015.05.0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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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270만명 넘는 카페도, 노하우 질문 하루 수 백 건씩

디자인 중시하는 젊은 세대, "가슴 뿌듯한 성취감 느껴"

아이방 Before ▶ 전문가를 통하지 않고 셀프 인테리어만으로도 집은 확 달라질 수 있다. 샐러리맨 김동현씨가 살고 있는 경기 고양시 아파트도 그의 손을 거치면서 고급 아파트 못지 않은 공간으로 바뀌었다. (아래 사진은 모두 이사 전과 인테리어 후 모습. 김동현씨 제공.)
아이방 Before ▶ 전문가를 통하지 않고 셀프 인테리어만으로도 집은 확 달라질 수 있다. 샐러리맨 김동현씨가 살고 있는 경기 고양시 아파트도 그의 손을 거치면서 고급 아파트 못지 않은 공간으로 바뀌었다. (아래 사진은 모두 이사 전과 인테리어 후 모습. 김동현씨 제공.)
아이방 After
아이방 After

한 인터넷 포털 커뮤니티 게시판에 집 천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질문 글이 올라왔다. “텍스(단열ㆍ흡음을 목적으로 목재 등을 압축해 만든 판)를 덜어내 철골에 석고보드를 댄 후 페인트칠을 하려고 한다. 석고를 한 겹으로 하고 타카(핀으로 구조물을 결합하는 도구)로 고정을 시켜야 하느냐, 아니면 나사로 박아야 하느냐”는 물음이다. 댓글이 금세 올라왔다. “나사로 해야지, 타카는 들어가지 않습니다”, “도배도 좋은 방법이에요”, “텍스 위에 바로 석고를 붙이는 게 저렴하면서 손쉽다”는 등 고수들의 백가쟁명(百家爭鳴)식 해법이 쏟아졌다. 셀프 인테리어 전문 인터넷 카페인 레몬테라스에서 벌어진 회원간 문답이다. 이 카페에는 집 내부를 꾸민 후기와 셀프 인테리어 초보자의 질문이 하루 수 백 건씩 올라온다. 10년 전 1만 명이던 가입 회원은 지금 276만 명이 넘는다. 가히 셀프 인테리어 붐이다. 패션, 디자인, 미용 등에 민감한 환경에서 성장한 20, 30대 가운데 생활공간에 직접 개성과 취향을 입히는 도락(道樂)에 빠진 이들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야구광인 김찬석(32ㆍ학원강사)씨의 구로구 신도림동 전셋집 서재는 메이저리그 라커룸 스타일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좌측 벽 옷장에 선수들 유니폼과 장비가 즐비해 있다. 옷장 맨 위칸에는 메이저리그 텍사스 레인저스 시절 박찬호 선수의 라커룸에 실제로 걸렸던 네임 플레이트(이름표)가 붙어 있다. 안에는 LA, 뉴욕, 필라델피아 구단 유니폼뿐만 아니라 추신수, 임창용, 서재응 등 유명 야구선수들의 유니폼이 수두룩하다. 옷장 옆 수납장에는 선수들이 실제 사용한 글러브, 배트, 스파이크, 헬멧, 사인볼 등이 전시돼 있다. 김씨는 “메이저리그 라커룸 사진을 보면서 직접 가구를 짜고 조립해 재현했다”며 “서재에 들어갈 때마다 흐뭇하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안방 Before
안방 Before
안방 After
안방 After

회사원인 박철훈(43)씨는 서울 중랑구 중화동 자신의 주택 옥상(70㎡)에 나무 데크와 인공잔디를 깔고 바깥 테두리에 화단을 직접 만들려고 한다. 옥상정원을 조성하는데 시공업체에서 700만원의 견적을 내놓자 아예 직접 손을 대기로 한 것이다. 설계도면도 직접 그렸고 삼나무 판재와 인공잔디 등 재료도 주문했다. 박씨는 “교외에서 캠핑하는 게 유일한 낙이지만 주말이라도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아 옥상을 캠핑장처럼 꾸미려는 생각”이라며 “아이에게도 좋은 활력소가 될 것 같아 결심했다”고 말했다.

프라모델이나 인형으로 집 내부를 꾸민 키덜트족(Kid+Adult族)이나 인스피리언스족(indoor+experience, 개인생활 공간을 다양한 용도로 꾸며 놓고 삶을 즐기는 사람들)이란 말도 나온 지 오래다. 집이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라 놀이터이자 힐링 장소가 됐다.

주방 Before
주방 Before
주방 After
주방 After

2008년 금융위기 전만해도 셀프 인테리어는 별난 취미에 속했다.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누구라도 할 수 있게 됐다. 초보자라도 도전해볼 만하다고 한다. 인터넷에 ‘셀프 인테리어’ 검색만 해도 벽지, 매트, 가구 등 일반적인 인테리어 제품판매 사이트뿐만 아니라 장식, 조명에 코너를 활용하기 위한 선반, 모자이크 타일 등 재료를 주문할 수 있는 곳이 지천이다. 전문 서적뿐만 아니라 인터넷 카페, 블로그 등에 고수들이 즐비하는 등 여건이 조성된 덕분이다. 초보자도 타일 부착, 조명 설치, 페인트칠 등 전문업자 영역까지 넘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직접 전동드릴 등 공구를 들고 실내 장식 소품을 만들기도 한다. 교사 손모(35ㆍ여)씨는 인터넷 블로그와 카페의 도움말에 힘입어 유치원생인 아이 방을 ‘키즈 카페’분위기로 꾸미는 데 도전했다. 이층침대와 책상을 두고 나머지 공간에 매트를 깔고 미끄럼틀을 놓는 플레이하우스로 꾸밀 계획이다. 손씨는 수납장, 이층침대, 책상을 직접 만들려고 목공소에 목재를 의뢰했다. 손씨는 “손재주가 있지는 않지만 해볼만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셀프 인테리어에 빠진 사람들은 자기 만족을 넘어 일상에 지친 자아를 정화하는 한 과정이라고까지 말한다. 집안에 대형 빔 프로젝터를 직접 설치한 황전환(43)씨는 “내 작업을 인터넷에 소개한 후 사람들이 노하우를 물어보면 피로가 확 풀릴 정도로 뿌듯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황씨는 설치법을 알지 못했으나 인터넷 커뮤니티를 보고 학습한 덕에 인건비 10여만원을 절약했고, 인터넷 카페에 도움 글을 올리고 있다. 최근 10여평 규모의 원룸을 북유럽풍으로 직접 단장한 이수민(27)씨는 “새로 이사한 집이라도 곳곳을 내 손길로 바꿨기에 정감이 간다”며 “2년 후 전세 계약이 끝나 다른 집으로 옮기더라도, 집 꾸미기를 계속해서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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