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 쌓기용 입상 경쟁 치열
학원비로 수십만원은 기본
실험실 통째 빌리고 교수 붙이기도
“초등학생 때는 애 혼자 준비해 상을 못 받은 것 같아 학원을 알아봤더니 한 달에 40만원 정도 내야 한다더군요.”
올해 중학교에 입학한 아들을 둔 학부모 A씨는 지난달 학교에서 개최한 과학탐구토론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서울 강남의 유명 과학전문학원에 상담 전화를 걸었다 한숨만 내쉬었다. 이 학원은 고액의 학원비에도 주말이면 대전에서 상경하는 학생이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A씨는 “과학토론 하나에 사교육비로 몇십만원을 써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혀를 내둘렀다.
신학기 학교별로 개최하는 과학탐구토론대회, 창의력대회, 상상화 그리기 등에서 입상을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고액의 사교육이 번성하고 있다. 학원비로 수십만원은 기본이고 많게는 수백만원까지 쓰는 학부모도 있다. 과학 탐구력과 창의성마저 부모의 재력으로 결정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서울 목동 지역의 한 과학전문학원의 경우 지난달 개최된 과학탐구토론대회 준비강좌가 가득 찬 데 이어 내년 대회 준비반까지 이미 마감됐다. 이 준비반은 대회에 참가하는 같은 학교 학생들끼리 3인 1팀을 꾸려야 신청이 가능하다. 수강료는 초등학생 기준으로 주 1회 수업에 월 14만~17만원 수준. 대회를 위해 탐구보고서 준비, 발표, 상대팀에 대한 질의내용 등까지 도움 받을 경우 팀당 월 66만원을 더 내야 한다.
교내 과학탐구토론대회는 매년 9월경 개최되는 한국과학창의재단 주관 과학전람회나 청소년과학탐구대회 ‘탐구토론’ 종목의 예선 격이다. 학교 대표로 선발되면 각 지역대회를 거쳐 시ㆍ도 대표로 전국대회에 나갈 수 있지만 교내 대회가 더 치열하다는 게 중론이다. 교외 수상 실적은 학교생활기록부에 적을 수 없고 교내 입상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과학창의재단 관계자는 “전국대회에서 탐구력을 인정받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게 아니라 학교에서 상만 받으면 된다는 인식이 생겼다”고 지적했다.
교내 입상 경쟁이 붙으면서 일부 부유한 학부모들은 과학실험실을 통째로 빌리고 대학원생이나 교수를 강사로 붙이면서 1인당 800만~900만원을 쓰기도 한다. 또 친인척 중에 자연계나 이공계 교수가 있다면 주제선정, 연구설계 등에 대한 조언을 받을 수 있어 불공정 경쟁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이처럼 과학영재원이나 과학고 진학을 위한 스펙 쌓기 차원에서 대회를 준비하는 풍토가 퍼져 있다 보니 청소년의 창의성을 기른다는 애초 목적은 뒷전에 놓일 수밖에 없다. 과학창의재단 관계자는 “실제 전국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는 학생은 오히려 사교육 환경이 열악한 지방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며 “돈과 인맥으로 과학 탐구력과 창의성이 길러진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됐다”고 말했다.
양진하기자 real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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