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당 소득 3만달러 시대, 과시보단 나만의 생활 선호
IT기업이 변화의 바람 주도, 부서장 중심 파티션 장벽 없애
조직원 창의ㆍ자율성 끌어 올려

가구공룡 이케아는 지난해 12월18일 문을 연 뒤 100일 동안 누적 방문객 220만명을 돌파했다. 단순히 이국적이고 실용적인 가구를 싼 값에 구입할 수 있게 돼 손님들이 몰리고 있다는 설명은 피상적이다. 사실은 그렇게 싸지도 않다. 다른 나라 이케아 제품 가격과 비교하면 비싼 물건도 있다. “이케아 제품은 현대인의 생활 패턴에 맞춰 생활용품을 고안하고 개성을 가미했다. 조립까지 고객이 직접 할 수 있게 했다. 단순한 가구 업체가 아니라 어른의 장난감 또는 놀이터 역할을 하는 라이프 스타일 업체다. 공간에 자아표현을 녹이고 싶다는 우리의 욕구와 이케아 제품의 성격이 맞아 떨어졌다.” 이케아 열풍에 대한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의 설명이다.

셀프 인테리어나 DIY(Do It Yourselfㆍ가정용품 직접제작) 붐은 1인당 국민총소득(GNI) 3만달러 시대에 접어든 우리의 소득수준 향상에서 찾을 수 있다. 1만달러 대에 마이 카, 2만달러 대에는 주택 구입과 규모 확장에 주력했다면 3만달러 대에 집 꾸미기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선진국에서도 GNI 3만달러 수준에 근접하면서 이런 문화가 형성됐다. 이웃 일본이 20년 전인 1992년 3만달러를 달성했는데 당시 유행했던 상품이 정원 가꾸기 용품, 유럽식 인테리어 상품 등이었다. 최순화 동덕여대 국제경영학과 교수는 “일본도 그 전까지는 외부에 보이기 위한 욕구가 강했지만 9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자기 만족을 추구하는 집 꾸미기가 유행하기 시작했다”며 “3만달러 시대는 과시에서 벗어나 내실을 다지는 생활 만족형 소비의 개막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주택에서도 이러한 의식 변화가 잘 나타난다. 총 주택수를 총 가구수로 나눈 주택보급률이 2013년 103%(주택수 1,897만곳, 총가구 1,841만세대)로 명목상 1가구 1주택 시대를 열었다. 여기에 1인당 주거면적(33.5㎡ㆍ2014년 기준)도 10평이 넘는다. 하지만 최근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2014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주거환경 만족도는 4점 만점에 2.86으로 그다지 높지 않다. 10년 전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사 이유다. 시설, 설비가 더 양호해서(24.9%)라는 응답이 가장 많다. 주택규모 확장(24.2%)이나 교통ㆍ입지(19.6%), 지역환경(19.2%), 자녀양육 및 교육환경(7.7%) 등 과거의 중요한 이사 이유들이 모두 후순위에 있다. 2006년 조사 당시에는 주요한 이사 목적이 주택규모(16.77%) 주택가격(16.43%) 교통여건(12.16%) 교육여건(11.66) 순이었다. 주택 내부 시설은 불과 5.2%밖에 되지 않았다. 주거, 생활공간에 대한 국민의 커다란 인식 변화다. 집을 넓혀가는 패턴에서 쾌적한 생활공간을 따지는 쪽으로 옮아가고 있는 것이다.
건축설계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조성욱(43) 설계사는 “최근 5년간 작은 평수의 단독주택을 원하는 일반 의뢰자가 크게 늘었다”며 “획일화한 공간, 층간소음, 프라이버시 침해 등으로 아파트에 싫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아파트에서 벗어나 단독주택을 요구하는 의뢰인들이 편한 보금자리를 만들어 달라는 요구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다.
기업의 사무실 환경도 예외는 아니다. 사실 효율성 측면에서 업무 환경이 갖는 중요성은 적지 않지만 사무실 공간은 지난 수 십 년간 변화가 거의 없었다. 파티션 장벽과 부서장을 중심으로 한 일자형 책상 배치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요즘 혁신기업은 다르다. 구글이 지난 2월 건설계획을 공개한 신사옥 사무실은 레고 블록처럼 필요에 따라 디자인을 바꾸도록 해놨다. 페이스북이 3월 완공해 입주한 신사옥도 부서 간 장애물 없이 완전히 뚫린 공간으로 구성하며 소통ㆍ혁신 등 기업 철학을 담았다. 우리 기업들도 사옥 내 카페나 정원 조성 등 직장 내 편의시설을 도입하고 부서의 파티션을 없애는 등 IT(정보기술) 업계들을 중심으로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만 기업 전반적으로 공간 혁신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공간은 어떻게 삶을 바꾸는가’의 저자 노미경 의료공간디자이너(위아카이 대표)는 “누구나 찾기 싫어하는 병원마저 환자 중심으로 디자인하면 편안한 마음이 들어 병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사라진다”며 “공간 활용에 따라 조직원의 자율성이 키워지고 혁신도 유도된다”고 말했다.
대구가톨릭대와 국립환경과학원이 2011년 진행한 ‘시간활동 군집별 노출양상에 의한 위해성 평가 연구’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이 주택, 회사 또는 학교 등 실내에서 머무르는 1일 평균 시간은 하루 20.95시간. 경제개발협력기구(OECD)가 지난해 조사한 삶의 만족도에서 36개국 중 25위를 차지한 우리나라에서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공간 혁명은 필연적인 과정이다. 현주석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는 “변화할 수 없는 것이란 게 공간에 대한 과거의 인식이라면 지금은 인간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수단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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