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경남지사가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8명 중 처음으로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한나라당 대표 경선을 앞둔 2011년 6월 당시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1억원을 받은 혐의다. 검사 시절 부패와 싸웠던 청렴한 ‘모래시계 검사’가 20년 만에 피의자로 검찰 수사를 받는 처지가 됐으니 아이러니다.
검찰은 홍 지사의 혐의 입증을 자신하고 있다. 성 전 회장의 측근인 윤승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을 4차례나 조사해 구체적인 정황을 파악했다. 윤 전 부사장은 “아내가 운전하는 차량을 타고 국회에 가서 1억원이 담긴 쇼핑백을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부사장의 일관된 진술, 성 전 회장의 메모와 생전의 인터뷰, 주변 인사들의 증언과 정황 등을 종합하면 혐의를 입증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홍 지사 자신이 윤 전 부사장을 회유하는 데 개입했다는 정황까지 드러났다. 검찰이 확보한 윤 전 부사장과 홍 지사의 측근들과의 전화통화 녹음 파일에는 “홍 지사의 부탁을 받고 전화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명백한 증거인멸 시도다. 그런데도 홍 지사는 혐의를 부인하는데 급급했다. “성 전 회장의 메모는 증거로 사용하기 어렵다”는 등의 법리논쟁을 펴는가 하면 “윤승모씨는 성 전 회장의 로비 창구다. 대선, 총선 때도 똑 같은 심부름을 했을 것”이라며 물귀신 작전까지 동원했다. 그의 군색한 변명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검찰 수사 착수 거의 한 달 만에 이뤄진 리스트 인물 첫 소환은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다. 본격적인 ‘성완종 리스트’ 수사의 시작을 알리는 동시에 막연한 단서에서 출발한 수사가 구체적인 성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그렇다. 검찰 안팎에서는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다음 소환자가 될 것이라는 전망에 이견이 없다. 이 전 총리의 금품수수 의혹에 대한 수사가 상당부분 이뤄졌고 그 역시 주변 인물을 회유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있어 소환을 더 늦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 다음 단계는 불법 대선자금 수수 의혹과 전ㆍ현직 대통령 비서실장에 대한 수사다. 특히 대선자금 의혹은 검찰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검찰은 최근 성 전 회장의 금고지기로 알려진 인물로부터 “대선 직전 성 전 회장이 2억원을 새누리당 선대위 관계자 김모씨에게 전달했다고 들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성 전 회장은 죽기 전 인터뷰에서도 “새누리당 홍문종 의원에게 대선자금으로 2억원을 전달했다”고 밝힌 바 있다. 수사 의지만 있으면 지금까지 나온 단서만으로도 충분하다. 검찰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고 오로지 드러난 증거와 사실 만으로 엄정하게 수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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