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끊겠다" 양가 반대 무릅쓰고 차례로 아이들과 인연 맺어
"첫째가 상실감에 눈물 쏟을 때 그냥 껴안고 함께 울어요"
셋째는 생모와 만남 이어가, 국내 입양 여전히 적어 안타까움
경기 시흥에 사는 이설아(40)씨는 세 아이의 엄마다. 2008년 생후 한 달 된 아들 주하를 공개입양 했고, 이후 두 아이를 차례로 품었다. 불임은 아니었지만 미대 입시강사 시절 할머니 손에서 자란 제자가 “설아 선생님이 내 엄마였으면 좋겠다”고 한 얘기를 듣고는 ‘아이한테는 100명의 선생님보다 한 명의 엄마가 필요하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결혼 4년 차, 특별히 아기를 가질 생각이 없던 이씨는 “그 한마디에 마음이 아려 내가 안 낳은 아이의 엄마가 되어보자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주하를 키우며 “낳아야 부모가 아니라 기르는 게 부모”라는 사실을 절절히 느꼈다고 했다. 그래서 두 번째 입양을 결심, 2010년 다섯 살이던 미루를 만났다. 돌이 지난 아이의 경우 입양기회가 적다는 점을 안타깝게 여겨 결심한 것이었으나, 노력 없이 그냥 사랑에 빠지는 신생아와 달리 이미 성격과 고집이 확실한 미루는 쉽지 않았다. “첫인상은 작고, 초라하고, 표정도 어두워 달갑지 않았어요. 아이도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아 그 해 봄부터 만남을 가져 크리스마스 이브에야 집에 데려올 수 있었죠.” 그 과정에서 포기할까도 생각했다는 이씨는 남편 김홍래(40)씨의 굳은 의지에 아이의 손을 잡았다. 올해 열살 된 미루는 기특하게도 맏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어찌나 잔소리를 하는지, 덩치는 작은데 야무진 군기반장이에요.”
혈연위주 가족제도가 공고한 우리 사회에서 공개입양은 아직까지도 활발하지 않다. 2012년 입양특례법에 따라 서류상 기록이 남아 끝까지 비밀에 부치기도 어렵다. 연을 끊겠다는 양가의 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주변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고 공개입양을 택한 이씨지만 아이의 상실감을 채워주는 것은 여전히 힘든 문제다.
미루는 부모 사랑을 듬뿍 받고 있지만, 생모가 자기를 포기해 입양됐다는 것을 인식할 나이가 되면서 때로 폭풍우 같은 눈물을 쏟아 이씨를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슬퍼하지 말라고 한다고 그 슬픔이 사라질까요. 미루가 울면 그냥 껴안고 함께 울어요. 속으로 건강하게 이 과정을 통과하게 해달라고 빌면서….”
“얼마 전 미루가 ‘낳아준 엄마를 닮아 내가 그림을 잘 그리나 봐’ 하더군요. 내가 절 얼마나 사랑하고 최선을 다해서 키우고 있는데, 화가 나죠(웃음). 하지만 자연스럽게 그런 얘기를 꺼낼 수 있어 다행스럽기도 합니다. 미혼모였던 생모가 키우지 못할 형편이었다고 대강 설명해줬는데, 아이가 크면 생모를 만나게 도와줄 생각이에요.” 네 살 된 셋째 완이의 경우는 생모와 종종 만나도록 하고 있다. 이씨는 “힘든 시간을 함께 나누면서 더 관계가 깊어지는 것 같다”며 입양도 자연스런 가족형태로 사회가 받아들이면 좋겠다고 했다. 건강한 입양가정 지원센터 대표를 맡은 이씨는 입양기를 담은 책을 쓰는 등 입양문화 확산에 힘 쓰고 있다.
8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입양된 한국 아동은 총 1,172명이다. 이 중 45%인 535명이 미국 등 해외로 입양됐고 국내 입양은 637명에 그쳤다. 2013년과 비교해 전체 입양규모는 늘었지만, 여전히 해외 입양은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복지부는 국내입양 활성화를 위해 현재 만 15세 미만인 입양아동양육수당 지급대상을 1년 연장하는 등 지원을 늘릴 계획이다. 해외입양아가 성장한 뒤 뿌리를 알고 싶어 고국을 찾을 때 좌절하지 않도록 입양기록을 전산화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2003년부터 지금까지 3만5,000건의 입양 아동 데이터 전산화 작업을 실시했고, 올해 4만건을 추가하는 등 총 24만건을 전산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입양 이후 관리 매뉴얼도 개정해 국내입양 아동만 1년 간 4회까지 적응 상태나 환경을 점검하던 것을 해외입양의 경우까지 확대했다.
한편 복지부는 11일 입양의 날을 기념해 9일 경기 과천시 시민회관에서 행사를 열고 이설아씨와 23년 간 위탁모로 활동한 송일례씨 등 21명을 포상한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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