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없었다면 로미오는 줄리엣에게 사랑을 고백할 기회를 놓쳤을지도 모른다. 비록 변덕스런 달에 대고 맹세하지 말라는 대꾸를 듣긴 했지만. 셰익스피어는 그렇게 썼다.
달은 문학과 예술, 신화와 전설로 끝없이 변주돼 왔다. 지구 전역에서 낭만의 상징이고, 서양에서는 광기의 상징이기도 하다. 인류가 달에 첫 발자국을 찍은 지 반세기가 지났지만 달은 여전히 신비한 매력 덩어리다. 달은 바닷물만 밀었다 당겼다 하는 게 아니라 사람 마음에도 파도를 일으킨다. 미치광이, 늑대인간, 순결한 처녀, 달나라 토끼 등 달과 연결된 숱한 이야기는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마음이 움직이면 역사도 움직이는 법. 고대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의 ‘펠레폰네소스 전쟁사’는 후퇴하려던 아테네군이 때마침 일어난 월식을 더 버티라는 계시로 해석해 꾸물대다가 스파르타에 패망했다고 전한다.
영국 리액션출판사의 ‘자연과 문화’ 시리즈를 번역한 첫 두 권으로 ‘달-낭만의 달, 광기의 달’과 ‘지진-두렵거나, 외면하거나’가 나란히 나왔다. 자연 현상의 과학과 문화를 하나로 엮어 소개하는 과학 시리즈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간결하면서 알기 쉽게 쓰고 생생한 도판을 많이 넣은 게 특징이다.
제 1권‘달’은 달의 과학을 달의 문화와 나란히 설명한다. 달을 관찰하고 연구해 온 과학의 발자취와 성과를, 달의 문화사와 한 꾸러미로 엮고 있다. 달의 기원, 천문학이 알아낸 달, 달의 상징, 달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 문학과 예술로 만나는 달, 달 탐사와 개척의 역사를 차례로 설명한다.
제 2권 ‘지진’은 지진에 맞서 온 과학의 분투와 지진의 참모습, 지진이 세계사를 움직인 주요 사건, 지진을 보는 각 문화권의 서로 다른 눈과 이야기를 전한다. 중세 유럽인들은 지진을 신의 분노로 여겼다. 그 바람에 애꿎은 이들이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 1775년 리스본 대지진 후 열린 종교재판은 생존자 몇 명을 이단으로 몰아 화형시켰다.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나라, 일본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으니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벌어진 조선인 대학살이 그것이다. 하지만 지진이 났을 때 때려잡을 것은 사람이 아니라 메기다. 일본전설에 따르면 지진은 거대한 메기의 장난이다. 보통 때는 일본을 지키는 신이 이 녀석의 머리를 커다란 돌로 눌러 놓는데, 신이 회의를 하기 위해 자리를 비우면 요놈이 꿈틀거려 땅이 흔들린다는 거다. 일본 기상청의 지진 초기 경보 로고는 바로 이 메기 그림이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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