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정신 바뀌어도 야당은 늘 그 모습
과거에 묶여 ‘기울어진 운동장’ 탓만
‘선명 투쟁’ 운운, 또 실패로 가는 길
4ㆍ29 재보선 결과는 폭이 좀 크긴 했어도 승패 자체는 그다지 놀랍지 않다. 어차피 후보들이 고만고만하면 정당을 보게 마련이므로. 1년짜리 뽑는 소규모 선거라면 더 그렇다. 여당의 앞선 마케팅 전술이나 야권 분열 등의 결과분석은 큰 틀에서 별 의미 없다. 당 지지율 흐름에서 승부는 일찌감치 났다.
사실 DJ 정부 후반 이후로 새정치민주연합 줄기의 ‘상대적’ 진보정당이 지지율에서 앞선 경우는 거의 없었다. 20년 가까이 그래왔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동과 2009년 5월 그의 서거 직후 반짝 뒤집었을 때를 제외하면. MB와 박근혜 지지율이 죽 쑨들 정당 지지율 순위는 고정이다.
고령화에 따른 보수화 경향이 크지만 운동장이 기울었다는 얘기가 나온 건 이미 10년도 훨씬 전이다. 2000년대 초반, 그땐 그래도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든 ‘합리적 40대’가 있었다. 민주화의 한 주역으로 세대간 균형추 역할로 이후 탄핵역풍까지 만들어냈던 그들도 어느덧 장노년 보수층에 편입됐다.
아이러니하게도 투쟁이니, 민주화니 하는 용어는 그래서 지금의 장노년층에 더 익숙하다. 이들이 별 쓸데없는 정치판 뒷얘기나 늘어놓는 종편TV 토크프로그램에 가요무대 보듯 매달리는 이유다. 젊은 날 변혁의 주역이었음을 자부할만한 추억으로 안고 있지만, 현실적으론 나라가 그저 시끄럽지 않기만을 바라는 안정 희구층이 됐다.
지금 세대의 중간역인 40대는 또 다르다. 정치적 변혁을 경험해보지 못한 그들에겐 경기의 부침과 산업구조의 변화가 변혁이다. 제 한 몸, 가족 건사하기에도 바쁜 그들에게 정치는 다만 국가사회를 잘 관리하는 능력과 기술이다. 이후 세대의 정치인식은 더 현실적일 것이다.
고령화가 아니라 문제는 시대정신이 전면적으로 바뀐 것이다. 변화에 먼저 약빠르게 적응한 건 여당이었다. 구체적 삶의 문제인 복지, 경제민주화 등을 대선에서 선점해버렸다. 입만 살았을 뿐 체질은 과거 그대로여서 제대로 하는 것 하나 없지만, 어쨌든 살림살이에 더 신경 쓰는 정당으로 보이게끔 하는 데는 성공했다.
그런데 야당은? 지난 재보선 때 여당의 “길 뚫어 집값 올려주겠다”는 등 구호에 “3전4기, 이번엔” “정권심판, 정권교체”로 맞선 걸 보면 안다. 지역정서가 특수한 광주에서조차 정치성 구호가 먹히지 않았다. 서민지역의 계층 배반적 투표행태를 개탄하나 이상할 거 없다. 여당 쪽이 현실생활을 개선해 줄 능력이 좀더 있어 보였을 뿐이다.
매번 선거여건이 같고, 판판이 지는 패인도 같다. 그런데도 야당의 진단은 똑같은 오답이다. 이번에도 어김없다. “야권 분열과 타성 반성”에 “반대, 견제, 투쟁의 진정한 야당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패인”이란다. 새 원내대표는 일성부터 “집권당의 오만 기만, 참사, 대여투쟁 선봉” 등 전사(戰士)의 어휘를 또 쏟아내기 시작했다.
국회선진화법도 있으니 선명 투쟁으로 정부여당의 법안, 정책 몇을 쉽게 좌절시킬 수는 있을 것이다. 의사당 안에서 작은 전투에 이겨봐야 전쟁에선 이길 수 없다. 약빠른 처신으로 기득권을 공고히 해가는 영리한 여당을 두고 늘 눈 앞의 싸움거리만 찾는 근시 무뇌의 야당을 보면, 보수 자민당 일당체제만 받쳐주다 끝내 소멸한 일본의 ‘투쟁적 만년야당’ 사회당의 모습이 겹쳐진다.
야당에게 집권할 생각이 정말 있는지를 묻는다. 아니면, 여당의 대척점에서 작은 반사이득이나 챙기며 국회의원직들이나 오래 할 생각인지를. 더 기울어질 운동장에서 이기려면 여당보다 더 시대변화에 적응하고, 더 유능해지고, 더 세련되어지는 방법 밖엔 없다. 독설로 선명투쟁이나 되뇌는 반(反)감각이라면 절망적이다. 그러려면 아직도 노무현의 한으로 당을 묶고 있는 친노의 반성과 내려놓음부터 전제돼야 한다. 도대체 오래 전 망자인 DJ, 노무현에 여전히 기대면서 무슨 새정치인가.
이렇게 더는 가선 안되겠는데, 도무지 희망이 안 보이니 하는 말이다. 이젠 제발 깨닫기 바란다. 야당 체질을 버려야만 야당이 살 수 있음을.
주필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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