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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50년 만에 되살아난 남자

입력
2015.05.08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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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작품에는 저마다의 운명이 있다. 존 윌리엄스의 장편소설 ‘스토너’의 운명을 보면 이 문장을 곱씹지 않을 수 없다. 이 작품은 1965년 미국에서 첫 출간된 소설이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딱 50년 전이다. 작가인 존 윌리엄스는 1922년 생으로 평생 총 네 편의 소설을 발표했다. 다른 소설로 내셔널 북어워드를 공동수상한 적은 있으나 생전에 화려한 대중적 조명은 받지는 못했다. 그는 작가인 동시에 덴버대학교에서 30년 동안 문예창작을 가르친 교수이기도 했다. 학문을 연구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소설을 쓰는 조용한 삶을 살다가 1994년 세상을 떠났다.

20여 년 가까이 ‘스토너’는 도서관에서도 쉽게 찾기 어려운, 빛의 속도보다 빨리 잊히는, 그 수많은 옛날 소설들 가운데 하나였다. 좀 다른 점이 있다면 우연한 기회에 이 소설을 읽은 사람들은 대부분 다 친구들에게 권했다는 거다. 이 책을 먼저 읽은 한 명의 독자로서 나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안다. 오랫동안 절판되었던 책이 2006년 ‘뉴욕 리뷰 오브 북스’판으로 재출간되는 과정에도 이 입소문이 한몫을 했다고 전해진다. 한 서점 주인이 출판사 편집장에게 이 소설을 극찬했다. 그는 소설을 구해 한 자리에서 다 읽었고, 언제 절판되었는지도 모를 이 책의 출판권을 재빨리 구입했다. 이어 ‘빈티지 클래식’판으로 출간되면서 이 입소문의 기적은 더 멀리까지 퍼져간다.

여러 영향력 있는 작가와 평론가를 비롯한 예술가들이 먼저 이 소설에 매료되었고 홍보를 자처했다. 프랑스의 작가 안나 가발다는 프랑스어판의 번역을 꼭 직접 하고 싶어 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이 시대의 가장 유명한 소설가 중 하나인 영국 작가 줄리언 반스는 2013년 12월 가디언에 이런 제목의 글을 썼다. ‘스토너:2013년에 반드시 읽어야 하는 소설’. 줄리언 반스는 ‘이 소설을 읽는 많은 사람들이 처음으로 자신이 문학적인 깨달음을 얻은 순간, 문학의 마법이 지닌 의미를 처음으로 아련하게나마 이해하고 그것이 삶을 이해하는 최선의 방법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 순간을 떠올릴 것’이라고 했다.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제목‘스토너’는 소설 속 주인공의 이름이다. 윌리엄 스토너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가업을 돕기 위해 미주리대학 농대에 진학한다. 영문학개론 수업시간에 셰익스피어의 73번째 소네트를 접한 순간 그의 삶이 완전히 바뀐다. 그는 문학을 연구하는 학자의 길을 걸어가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삶의 고통과 부조리를 묵묵히 견디면서 다만 읽고 가르치고 살아간다.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되느냐고? 세속적 성공도 가족의 행복도 이루지 못하고 평생을 책 속에서 고독하게 살다 암에 걸려 죽는다. 이것이 소설의 전부다.

그런데 왜 이 특별할 것 없는 남자의 일생이 이토록 뒤늦게, 2010년대 유럽에서 돌풍을 일으키게 된 걸까?(네덜란드에서는 20만부 넘게 판매되며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고 영국에서는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이와 관련해 ‘뉴요커’에 실린 팀 크라이더의 글은 참고할 만 하다. 그는 스토너를 반(反)개츠비적인 인물로 읽었다. ‘위대한 개츠비’의 주인공 개츠비는 우리가 허구의 인물에게 바라는 환상을 구현하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사랑에 목숨을 거는, 베일에 가려져 있는, 비밀을 간직한, 젊고 잘 생긴 부자. 비극의 방식으로 생을 마감하는 것 같지만, 그 정점에서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리는 화려한 비극성이야말로 개츠비에 대한 하나의 판타지를 완성한다. 그러나 스토너는 그 정반대편에 있다. 그는 중세의 학문을 연구하면서 느리고 소박하게, 때론 꾸역꾸역 산다. 자신에게 왔다가는 치욕과 고통과 슬픔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문학을 통해 가지게 된 내면의 존엄을 잃지 않음으로써 운명에 대항한다. 마음의 빈 공간 같은 것을 꿈꿀 시간도 여력도 없는 시대, 21세기 사람들은 그래서 앞서 살다간 한 평범하고 위대한 남자의 생을 응시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정이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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