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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가 말한 비르투는 힘이 아닌 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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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가 말한 비르투는 힘이 아닌 덕

입력
2015.05.08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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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곽차섭 옮김 도서출판 길ㆍ476쪽ㆍ3만3,000원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곽차섭 옮김 도서출판 길ㆍ476쪽ㆍ3만3,000원

마키아벨리의 ‘군주론’만큼 자주 읽히고 동시에 지탄받은 책이 또 있을까. 군주에게 자비보다 냉정을, 사랑보다 공포를, 신의보다 배신을 권한 그의 저술은 수세기에 걸쳐 분분한 해석을 낳았다.

곽차섭 부산대 사학과 교수가 새로 내놓은 ‘군주론’은 정본 번역에 공을 들인 책이다. 문헌ㆍ서지학적 배경을 충실히 다뤘고 120여쪽에 이르는 ‘옮긴이의 말’을 통해 악명 높은 모사꾼으로 소비돼 온 마키아벨리 사상의 뿌리를 소개한다.

‘군주론’은 현재 마키아벨리 자필본이 없는 상대로, 원 제목은 ‘군주국에 대하여’였다. 사후 5년 뒤인 1532년 ‘군주’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진 이후 숱한 필사본, 수정본이 나왔다. 1994년 서지학자가 여러 수정본을 망라해 내놓은 비판본이, 2006년 이탈리아 정부 후원으로 국가판(마르텔리판)이 발행됐다. 30여년간 마키아벨리와 르네상스사를 연구한 곽 교수는 마르텔리판을 중심으로 이탈리아어 원문을 옮겼고, 문장 번호를 단 원문과 한국어를 양 페이지에 나란히 실어 한 눈에 비교할 수 있도록 했다. 국내에 이탈리아 원문 대역본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가장 큰 차이는 비르투(virtu)를 우리말 덕(德)으로 옮긴 것이다. 사전적으로 우리 말의 덕, 용기를 의미하는 비르투는 국내에서 1958년 최숙형 경북대 교수가 ‘실력’으로 옮긴 후 줄곧 힘, 역량 등으로 번역돼 왔다. 하지만 곽 교수는 “이는 덕을 강한 도덕적 의미를 가지는 유가적 덕으로만 보는 우리의 지적 편협성에서 비롯된 결과”라며 “서양학문의 전통에서 덕은 도덕적 성품보다는 어떤 일에 대한 탁월성, 효율성을 포괄하는 보다 고대적 함의를 가진다”고 설명했다.

역자는 마키아벨리가 말하고자 하는 덕의 본질이 “안정된 상태에서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분별보다는, 비상하고 위급한 상황에서 필요한 조치를 신속하고 결단성 있게 취하는 능력”이라며 “덕의 쇠퇴는 곧 부패”라고 해석한다.

즉 마키아벨리가 군주에게 당위와 도덕보다 현실을 권고한 까닭은 힘과 공포로 신민을 제압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신군주가 덕으로 운을 제압하고 자신의 모든 성품과 방책을 발휘해 이탈리아를 지키고 야만인들로부터 그곳을 해방시키기를 요구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비타 악티바(vita activa), 즉 행동적 삶을 촉구한 것이다. 덕은 힘 역량 능력 활력 용기 등을, 운은 통제 불가능한 조건과 상황을 뜻한다.

이 같은 곽 교수의 해석은 그가 소개하는 마키아벨리의 종교관과도 맞닿아 있다. 마키아벨리는 고대 로마 시인 루크레티우스에 매료돼 있었다. 루크레티우스 사상의 핵심 개념은 ▦창조주는 없다 ▦우주의 모든 것은 원자로 이뤄진다 ▦사물은 원자의 빗나감으로 만들어진다 ▦빗나감은 자유의지의 원천이다 ▦종교는 사후의 벌에 대한 두려움에 기초한 미신이다 등으로 당시로서 파격적인 내용이다.

스테파노 우시의 1894년 그림 '니콜로 마키아벨리, 서재에서'. 마키아벨리는 메디치가 축출 이후 공화정에 봉직했다는 이유로 메디치가의 복귀 후 고문까지 당했지만, 주저앉지 않고 시골에 은거하며 '군주국에 대하여'를 썼다. 도서출판 길 제공
스테파노 우시의 1894년 그림 '니콜로 마키아벨리, 서재에서'. 마키아벨리는 메디치가 축출 이후 공화정에 봉직했다는 이유로 메디치가의 복귀 후 고문까지 당했지만, 주저앉지 않고 시골에 은거하며 '군주국에 대하여'를 썼다. 도서출판 길 제공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신은 우리에게서 자유의지와 우리에게 속한 그 영광의 부분을 빼앗지 않기 위해 모든 것을 다 행하려 하지 않는 것”이라고 적는 등 시종일관 운에 대항하는 자유의지를 논하는 것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곽 교수는 “결국 분열과 침략으로 점철된 이탈리아 상황에서 인생이나 국가의 운명을 포르투나에 전적으로 맡겨 놓을 수 없다는 것이 마키아벨리의 단호하고 명쾌한 언명”이라고 강조한다. 그의 해석대로라면 ‘군주론’은 권모술수의 가이드북이라기보다, 지도자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국가와 인민을 지켜내고, 그를 위해 끝없이 움직이라는 호소의 결과물로 읽는 것이 마땅하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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