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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전문 비평가 많이 나와, 시조 베스트 10 같은 기획들 나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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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전문 비평가 많이 나와, 시조 베스트 10 같은 기획들 나왔으면"

입력
2015.05.07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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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된 활자 수 안에서 조사 하나 허투루 쓰인 게 없어

작품 속살과 결 뜯어보는 작업

작품은 쏟아지지만 평가해줄 중립적인 시선 없어

음풍농월에서 벗어나지 못해 대중과 평단서 외면 당해

현실 쟁점 다뤄야 미래 있다

제26회 팔봉비평문학상을 수상한 유성호 한양대 국문과 교수. 1999년 등단해 현대시 비평에 매진해 온 유씨는 "처음 낸 시조 비평집으로 상을 받을 줄은 몰랐다"며 웃었다. 홍인기기자 hongik.hk.co.kr
제26회 팔봉비평문학상을 수상한 유성호 한양대 국문과 교수. 1999년 등단해 현대시 비평에 매진해 온 유씨는 "처음 낸 시조 비평집으로 상을 받을 줄은 몰랐다"며 웃었다. 홍인기기자 hongik.hk.co.kr

올해 팔봉비평문학상에는 유독 최초라는 수식이 많이 붙는다. 유성호 한양대 국문과 교수의 ‘정격과 역진의 정형 미학’(작가)은 팔봉비평문학상이 배출한 최초의 시조 비평집이자 국내 문학평론가가 쓴 첫 시조 비평집, 그리고 유씨가 비평을 시작한 이래 처음 펴낸 시조 비평집이다. 그는 “10여 년간 시조 비평에 진력해온 하나의 마디를 정리하는 셈”이라고 자평했다.

국내 시조의 현황을 이야기하려면 일단 생존 신고부터 해야 할 것이다. 근대문학의 발발과 함께 주류의 자리에서 내려온 시조가 그 후 누구에 의해 어떻게 쓰여지고 또 발전하고 있는지는 순전히 ‘업계’ 사정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현재 한국에서 시조를 쓰는 시인은 (잠재적 시인까지 합쳐) 2,000명에 육박한다. 신춘문예에 시조 분야를 포함시키는 언론사만 열 곳이 넘고, 이들이 발표한 시조를 실어줄 문예지도 10여개에 이른다. 주변부 문학 치고는 풍부한 인적 구성과 플랫폼을 자랑하지만 유독 빈약한 구석이 바로 비평이다.

현재 국내 문학평론가 중 시조만 다루는 사람은 한 명도 없으며 시 비평가 중 시조비평을 겸하는 이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 비평의 기능이 작품의 숨은 장점을 발굴하고 창작자를 격려하며 해당 장르의 문학사적 가치를 재조명하는 것이라 할 때, 창작자와 비평자 수의 심각한 불균형은 시조 시단이 당면한 가장 큰 장애물이다.

“800년의 역사를 가진 시조가 그 장르적 연속성이 한 번도 끊기지 않은 채 이어졌다는 건 놀라운 일이에요. 그에 비해 시조 비평은 양과 다양성에 있어 열악하기 그지없습니다.”

시조가 비평의 불모지가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유씨는 평론가들의 무관심에 먼저 집중했다. 대중은 물론이고 문단에서도 관심을 보이지 않으니 시조 비평에 투신하려는 평론가들도 없는 것. 비평이 부재한 자리엔, 시조 시인들끼리 덕담처럼 주고 받는 해설만이 남았다. 유씨는 “왕성하게 쏟아져 나오는 시조 작품을 평가해줄 중립적이고도 따뜻한 시선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시가 구속을 벗어나 자유를 향한다면 시조는 엄정한 규격 안에 스스로를 구속하죠. 시에는 말과 음악이 넘쳐 나지만 시조에는 극도로 정제된 언어만이 있습니다. 말이 범람하는 시대에 이 같은 응축은 오히려 새로워요. 근대성에 대한 반성이 쏟아지는 요즘, 어쩌면 시조가 가진 한계는 반대로 가능성이 될 수도 있습니다.”

유씨는 시조의 특징인 정형성이 비평자의 자세도 바꾼다고 말한다. 시조 시인들이 정해진 규격 안에 몸을 밀어 넣는 수고를 감당하는 동안 비평자는 그 몸짓 하나하나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것이다.

“요즘 시 비평은 단어 각각의 의미를 읽어내기보다 전반적인 메시지를 유추하는 경향이 큽니다. 시를 쓰고 그 옆에 평론가의 철학적 사유를 병치하는 식이죠. 하지만 시조는 그렇게 할 수 없어요. 한정된 활자 수 안에서는 조사 하나도 허투루 쓰인 게 없거든요. ‘바람이 서늘하여’와 ‘바람이 서늘도 하여’는 완전히 다른 의도로 쓰였을 테고 비평자는 이걸 놓쳐선 안 됩니다. 자연스럽게 시조 비평은 작품의 속살과 결을 뜯어보는 작업이 되죠. 개인적으론 처음부터 끝까지 의미로 꽉 찬 시를 선호하는데 이런 성향이 시조 비평에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유씨는 시조가 대중과 가까이 호흡하기 위해 “사람살이의 구체성으로 내려올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고시조의 음풍농월(吟風弄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성향이 시조를 대중과 멀어지게 했고 이는 곧 평단의 외면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현실의 쟁점을 다루지 않는 시조는 비평 욕구를 불러 일으키지 못한다”고 말했다.

“시조는 옷으로 따지면 넥타이까지 갖춰 맨 정장차림이라 절규나 분노에 최적화된 장르는 아닙니다. 하지만 절규하지 않고도 사회 쟁점을 다룰 수 있는 방법은 많습니다. 시조의 미래는 현대인의 일상에 얼만큼 가 닿느냐에 달려 있는 듯 합니다. 그때 비로소 논쟁적이고 예리한 비평도 쏟아져 나올 겁니다. 개인적으론 시조 전문 비평가들이 많이 배출돼 ‘시조 베스트 10’ 같은 재미 있는 기획들이 나왔으면 합니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유성호 교수는

▦1964년 경기 여주 출생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동 대학원 문학박사 ▦1999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으로 등단 ▦저서 ‘한국 현대시의 형상과 논리’ ‘상징의 숲을 가로질러’ ‘침묵의 파문’ ‘한국 시의 과잉과 결핍’ ‘현대시 교육론’ ‘문학 이야기’ ‘근대시의 모더니티와 종교적 상상력’ ‘움직이는 기억의 풍경들’ ▦대산창작기금, 김달진문학상, 유심작품상, 편운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수상 ▦현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문예지 ‘작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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