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입하(立夏)가 지났다. 벌써 계절은 연중 춘하추동 순환의 두 번 째 마디인 여름으로 접어든 셈이다. 이 때쯤 태양의 황경(黃經) 각도와 우리나라의 위도를 종합해 산정하는 햇빛의 조사 각도는 중부지방 기준 64~65도에 이르러 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일찍이 얼음장 밑에서 파릇파릇 돋아났던 냉이 같은 봄나물이나 화려했던 봄꽃은 이미 아득히 스러지고, 나무의 신록이 하루가 다르게 움씬움씬 자랄 때다.
▦ 이맘때 2~3주는 산과 들에 풍성한 잔칫상이 벌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부드러운 흙에서 돋아난 최초의 순한 나물들과 나뭇가지에서 이제 막 돋아난 새순의 맛이 가장 좋을 때이기 때문이다. 봄나물은 대개 향으로 먹지만, 이맘때의 산나물과 새순은 향도 향이거니와 조직에 힘이 있어 날캉날캉 씹히는 맛도 그만이다. 곡우(穀雨)를 전후해 한 차례 봄비가 내리고 나면 야산 어디나 비죽비죽 솟아나는 고사리 새순은 들기름 넣고 약한 불에 살살 볶은 뒤 햇감자 등을 가미해 국을 끓이면 고깃국보다 더 맛있다.
▦ 무쳐 먹고 비벼 먹기도 지금이 제철이다. 산 속에선 10m 거리에서도 맡을 수 있을 만큼 상큼한 향이 으뜸인 참나물은 간장 참기름 마늘 깨소금을 넣어 숨이 죽지 않도록 살짝 무치곤 했다. 곰취나 오갈피순나물의 향은 은근하면서도 깊은데 참기름에 된장, 고추장을 섞어 무친 뒤 밥에 비벼 먹으면 쌉싸름하면서도 개운한 뒷맛이 일품이다. ‘산채의 제왕’으로 알려진 두릅은 향긋하면서도 쌉싸름한 맛을 살리려 살짝 데쳐 초장에 찍어 먹는다.
▦ 개인적으로 하지 산나물 중 으뜸으로 치는 건 옻순이다. 체질에 맞지 않으면 심한 알레르기를 유발하기도 하지만 된장과 고추장을 2대1쯤으로 섞고 참기름에 깨, 마늘을 넣고 무쳐 먹으면 살강살강 씹을 때 번지는 고소한 풍미가 비길 데 없다. 닭이나 오리를 국물 흥건하게 백숙으로 끓인 뒤 샤부샤부처럼 옻순을 국물에 살짝 데쳐 초장에 찍어 먹어도 좋다. 옻순을 먹으면 하루 이틀은 몸에 훈훈한 기운이 감도는 것 같다. 강원도 양양에서부터 충북 옥천의 옻순축제까지, 각지의 산나물 축제가 한창이다. 불과 1~2주면 제철을 지나게 되니 발길을 서둘러야겠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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