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공공기관 경영평가가 한창 진행 중이다. 공공기관들의 한 해 농사를 진단해 성과를 평가하고 부실을 개선하기 위한 과정이다. 평가를 잘 받아야 임직원들의 급여와 근로조건이 좋아진다. 아울러 기관장의 위상과 급여도 평가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기관들은 평가를 잘 받기 위해 사소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정부의 다양한 정책 사업에 참여할 뿐 아니라 각종 경진대회에도 적극적이다. 사실 고유의 업무 영역과 크게 관련 없는 일이지만 정책 사업에서 성과를 거두면 평가에서 가점을 얻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는 정부는 각종 정책의 적용대상으로 공공기관을 선택한다.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정규직 전환과 관련해서도, 정년연장에 따라 임금피크제 도입이 필요한 경우에도 우선이 공공기관이다. 통상임금 논란을 계기로 성과형 임금체계로 전환이 이슈가 되어도 공공기관이 적용 일순위다. 정부가 추진하려는 노동시장 정책의 첫 번째 실험무대가 공공기관인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공공기관 근로자와 노동조합에서 볼멘소리가 나온다. 기관의 필요라기보다 정부 요청으로 인사정책이 결정되며 그 결과가 평가로 환원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부채청산과 소위 방만경영 개혁 드라이브로 공공기관이 홍역을 치렀다. 기획재정부는 부채 많은 기관 18곳을 특정해 감축을 요구했고, 이를 포함한 총 38개 기관을 임직원 복지수준이 과도한 ‘방만경영 기관’으로 지정했다. 아울러 해당 기관에 기관장 직위와 임직원 임금을 담보로 시급한 시정을 요구했다. 부채의 원인 등을 둘러싸고 불만과 하소연이 이어졌으나 공공기관 처지에서 백기 이외에 선택할 옵션은 많지 않았다. 기재부 계산에 따르면 그 결과 24조여원 부채가 감축되었고 약 2,000억원의 복지비용이 감소되었다.
개혁 드라이브로 공공기관의 운영 비효율이 개선되었다고는 하나 구조적 문제는 여전하다. 여러 쟁점 가운데도 경영평가 기준과 방법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간 논쟁은 오래된 과제다. 공공기관은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운용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존재 목적이 재무적 이윤창출이라면 공공영역에 존재할 이유가 없다. 공공기관은 공공적 책임(공공성)과 기업적 책임(이윤창출)을 동시에 추구해야 하며 기관의 운영과 성과도 이러한 관점에서 관리되어야 한다. 따라서 공공기관 운영 및 평가에서 공공적 가치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며 이를 전제해야 공공기관의 자발적 사회책임을 기대할 수 있다.
평가제도의 개선을 고려한다면 공공기관의 경영성과는 크게 ‘경제적 가치’와 ‘공공적 가치’로 구분할 수 있다. 그 동안 경영평가의 초점은 경제적 가치에 집중되어 왔는데, 경제적 가치는 기업이 생산하는 가치와 동일한 것으로 보통 영업이익 등 재무적 성과로 그 수준을 평가한다. 반면, 공공적 가치는 기관의 활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적 가치 이외의 사회적 영향 가운데 화폐가치로 환산 가능한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철도의 운용으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공해 절감의 환경효과, 낮은 전기료 공급에 따른 기업의 비용절감 효과, 임금피크제의 도입을 통한 장년층 고용효과, 나아가 청년고용 확대에 따른 구매력 상승과 사회 안정 효과 등이 그것이다.
요컨대, 경제적 가치가 공공기관 경영평가의 배타적 기준이 된다면 기관들에게 적극적 노동시장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 재무적 기준으로 기관을 평가하는 경우 인력을 줄여야 비용이 절감되고 비용을 줄여야 수익이 확대되기 때문이다. 과거 수년 동안 공공기관에 계약직 근로자 비율이 높아지고 사내도급이 확대된 이면에는 이런 평가방식이 자리잡고 있다. 공공기관 평가의 기준을 조정하고 기관의 공적 역할을 모색해야 청년고용도 확대되고 중장년층 고용도 증가할 수 있다. 공공기관 경영평가 기준의 개선을 통해 각 기관의 노동시장 책임이 확대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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