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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길 위의 이야기] 양배추 돼지일까, 양배추 사람일까

입력
2015.05.07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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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양배추 소년’이라는 그림책을 봤다. 초 신타라는 일본 작가가 쓰고 그린 작품인데, 처음 듣는 이름이다. 그림책을 제대로 본 적도 없고, 평소 관심 기울인 적도 없던 차에 낯선 경험이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용은 이러하다. 양배추 소년이 길을 가다가 돼지 아저씨를 만난다. 돼지 아저씨가 자기를 잡아먹으려 하자 소년은 자기를 먹으면 양배추 돼지가 되어서 하늘에 구름처럼 떠버릴 거라고 말한다. 그 얘기에 찔끔한 돼지 아저씨. 뱀, 너구리, 고릴라, 개구리, 사자, 코끼리, 벼룩, 고래 따위가 널 먹으면 어떻게 되냐고 거듭 묻는다. 소년의 대답은 똑같다. 모두 양배추처럼 되어 하늘에 떠버린다는 것. 그 광경이 실제로 하늘에 있는 걸 보고 돼지 아저씨는 불쌍해진다. 낙담한 그를 데리고 양배추 소년이 맛있는 걸 사주러 가게에 간다는 게 끝. 소년의 대사는 하늘을 보며 “저렇게 돼요!”가 거의 전부. 그림과 함께 보다가 “저렇게 돼요!”를 리듬감 있게 반복해서 따라하는 나를 깨닫고 피식, 웃음이 났다. 의미와 개념과 메시지 따위를 놓아버린 머릿속이 새삼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도화지처럼 여겨져 해갈을 느낀 건지도 모른다. 그러다 문득, 아이들이 나를 볼 때 양배추 돼지 같을까 양배추 고릴라 같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양배추를 데쳐먹었다. 거울을 보니, 아직은 사람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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