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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메모]손현주 "좋아서 하는 연기, 슬럼프 빠질 새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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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메모]손현주 "좋아서 하는 연기, 슬럼프 빠질 새 없다"

입력
2015.05.07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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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손현주.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손현주.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약속 시간보다 20분 정도 일찍 인터뷰 장소에 도착했다. 전날 관계자들과의 술자리나 교통체증을 핑계로 지각하며 짐짓 스타의식을 발휘하는 젊은 배우들과는 달랐다. 사람들을 보자마자 허리를 깊게 구부렸고, 곧잘 웃음을 터트렸다.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의 손현주는 행동과 주변에 대한 배려로 스크린 밖 면모를 드러냈다. 7일 오전 서울 소격동 한 카페에서 영화 ‘악의 연대기’ 개봉을 앞둔 손현주를 만났다. 그는 출세가도를 달리다 한 살인사건에 휘말린 뒤 몰락하는 형사반장 최창식을 연기했다. 인물의 내면을 과장하지 않고 섬세하게 표현해내는 그의 호연이 여전히 빛난다. 그는 눈빛만으로도 희열과 분노, 절망, 공포, 긴장 등 다채로운 감정을 표현해낸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면을 표현해내야 하는 연기가 어려웠을 듯하다.

“은폐로 인생을 시작했기에 애써 또 감춰야 하는 역할이다. 뭔가를 숨겨야 한다는 것 때문에 굉장히 괴로움이 컸다. 동료 배우들과 있으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혼자 있는 시간도 많았고 병원에 있다 나온 시기(그는 영화 촬영을 앞두고 갑상선암 수술을 했다)에 촬영한 영화라서 편하게 함께 술 한잔 먹을 시간 없이 외롭게 보냈다.”

-몸이 좋지 않은데도 촬영을 한 영화다.

“(몸과 마음을) 다스리면서 살려고 하나 쉬면 또 뭐하겠나. (영화 ‘튜브’로 데뷔한) 백운학 감독이 오랜 만에 메가폰 잡은 영화라서 잘 만들어 보고 싶었다. 백 감독과 이야기도 많이 했고, 어떻게 여백과 공간을 메워나갈까 고민했다. 화려한 액션이 없는 영화다. 큰 액션이 많았으면 차라리 덜 힘들었을 것이다.”

-최창식은 자신의 비밀이 들킬까 봐 마음을 많이 졸이는 인물이다.

“오랫동안 쌓아둔 것, 이룬 것을 한 순간에 잃을 수 있는 상황에 처한다. 누구나 감추고 싶고 덮고 싶고 은폐하고 싶은 게 있을 것이다. 다른 시나리오도 마찬가지지만 이 영화는 특히 뒷부분을 많이 안 읽고 촬영에 들어갔다. 내가 너무 많이 알고 연기하면 영화도 재미 없어지리라 생각했다.”

-이번에도 스릴러다. 드라마든 영화든 스릴러를 많이 하는데 취향의 반영인가, 아니면 출연 의뢰가 많이 들어오나.

“요즘 스릴러 장르 시나리오가 많이 들어오긴 한다. 사람은 다 때가 있다. 시간이 지나면 다른 것을 할 수 있다. TV드라마 할 때 데릴 사위 역할을 잘하면 데릴 사위 역할이 많이 주어지더라. ‘악의 연대기’는 시나리오가 재미있고 그만큼 연기하기 힘들 것이라 예상했으나 해보고 싶었다. 안 하면 안 될 것 같기도 했다. 백 감독이 왜 나한테 시험을 주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 배우 최원영과 심이영 결혼식장에 와서 별 이야기 없이 가만히 서계시던데 내가 이분 영화 안 하면 천벌을 받을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내가 뭐 그리 잘난 놈도 아니고.”

-기존 형사 영화와 다른 점이 있어나?

“형사도 사람인데 크게 다르지는 않다. 비단 형사뿐 아니라 일반인의 내면도 최창식과 같지 않을까. 잘나가는 사람이 계속 잘나가고 싶은데 뜻대로 안 되니 계속 감추려고 한다. 요즘은 감추려고 해도 감춰지지 않는 시대다. 난 끝까지 감출 수 있으면 감추자는 생각으로 연기했다. 결국엔 파멸이 예정돼 있지만. 동료에게 감춰야 하고 나 스스로에게조차 감춰야 하는 역할에 중점을 두고 연기했다. 심리적인 측면을 강조한 영화다.”

-드라마에 비하면 영화쪽 주연은 상당히 늦은 편이다.

“영화전문지에서 사진기자로 일하는 형이 오래 전부터 ‘너도 영화를 했으면 좋겠다’고 만날 때마다 이야기를 했다. 사람은 다 때가 있다, 내 때가 아닐 때 덤비는 것은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영화에 집중하고 있으나 어느 때가 되면 또 TV드라마를 하게 될 것이다. 영화에서도 스릴러가 아닌 코미디 휴먼을 하게 될 것이다. 기다리고 준비하면 때가 온다. 후배들에게도 그런 이야기를 한다. 나이는 그리 뭐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래도 외모에는 신경을 많이 쓰이지 않나?

“배우 외모에 대한 관객들의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나 같은 얼굴이 더 많이 쓰일 것이다. 이성민이나 이희준 같은 배우는 얼굴이 매우 평범하다. 그런 평범한 얼굴에서 많은 것이 나온다. 내가 좋아하는 마동석, 고창석, 유해진도 평범한 얼굴에서 범상치 않은 게 나온다. 나는 평범한 내 얼굴을 좋아한다.”

-영화 속 형사 연기가 정말 사실적이었다. 말투나 태도가 경찰과 매우 흡사했는데 준비는 어떻게 했나?

“형사들과 한달 가까이 같이 지냈다. 그리고 난 몇 년째 명예경찰이다. 경찰들과 가끔 만나서 술 한잔씩 한다. 2000년대 초반부터 형사들을 알게 됐다. 그 분들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지켜 봐왔다. 딱 보면 형사라는 느낌이 난다. 특히 사건현장에서 표시가 나는데 긴장이 보이기 때문이다. 나도 영화를 찍으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하며 살았다.”

-1991년 데뷔했다. 어느 인터뷰에서 ‘목숨 걸고 연기하라’는 말도 했는데 24년 동안 매번 목숨 걸고 연기하긴 힘들었을 텐데 슬럼프는 없었나?

“24년 동안 목숨을 걸었으면 목숨이 없어졌어야 맞을 것이다(웃음). 슬럼프는 없었다. 누가 연기하라고 해서 하는 게 아닌데 왜 슬럼프가 있겠나. 난 ‘연기하기 싫으면 하지마’라고 후배한테 말한다. ‘손현주씨 연기 좀 해주시겠습니까’라고 누가 그러나? 내가 좋아서 하는데 왜 불만을 갖겠나. 단지 시나리오 사이 사이(의 감정)를 어떻게 메울 것인가가 괴롭다. 슬럼프에 빠진 시간이 없는데 왜 괴로운가. 물론 나도 중간중간 쉰다. 산을 좋아하니 등산을 간다. 아직까지도 못한 유일한 운동이 골프다. 골프에 대한 재미는 못 붙였다. 그래도 창피하니까 골프를 한다고는 한다.”

-대표적인 중년 배우인데 갑상선암에 걸렸을 때 기분은 어땠나?

“더하고 싶은데, 좀 더 더하고 싶은데, 정답을 지금 찾아가고 있는데, 좀 더 했으면, 좀 더 하면 안될까요라고 속으로 말했다. 그런 한편 마음을 놓기도 했다. ‘(하늘에)올라가서 만들지 뭐’, 그렇게 생각했다. 제 앞에 먼저 가신 선배들도 많으니까(웃음).”

-자녀한테도 하기 싫은 일은 하지 말라고 하나?

“그렇다.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한다. 큰 아이가 예술고등학교에서 성악을 공부하고 있다. ‘네가 좋아서 시험까지 보고 들어간 학교이니 네가 책임지면 돼’라고 말한다. 왜 자기가 좋아서 선택한 것을 하면서 징징거리나.”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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