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들여 준비한 간담회 지각하고도
휴대폰만 보다 "일정 있다" 나가버려
대신 진행한 부총장에 건의하자
편견 담긴 발언으로 학생들 상처만
"대학 관계자들 인권 의식 크게 미흡"
지난달 30일 서울의 명문 사립 A대 학생회관. 이 학교의 장애 학생과 학생회, 장애인권동아리 회원 40여명이 총장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들의 만남은 장애 학생들이 학교 측에 교육 환경 개선 등을 요청하고, 소통하기 위해 2년 전부터 추진해 이뤄진 것이었다.
다른 지역에 분교가 있는 이 학교는 통학 버스를 운영하고 있지만 휠체어를 탄 장애학생들은 탈수가 없어 2시간30분 거리를 지하철로 이동하는 상황이었다. 또 건물에 화재가 날 경우 장애 학생들이 무사히 대피할 수 있는 시설도 부족했다. 학생들은 간담회에서 이에 대한 개선 등을 요청할 예정이었다.
이 대학 총장이 장애 학생들과 공식적인 간담회를 가진 것은 처음이었지만, 이들의 만남은 20분을 넘기지 못했다. 예정보다 10분 늦게 간담회장에 온 총장은 다른 일정이 있다는 이유로 20분만에 자리를 떴다. 한 학생은 “그나마 짧은 시간 동안에도 총장은 계속 핸드폰만 보고 경청하지 않는 자세를 보였다”며 “학생들이 많은 기대를 했는데, 2년 간의 준비가 너무 허망했다”고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대신 부총장이 간담회를 진행했지만 이번에는 장애학생들을 배려하지 못하는 발언을 해 빈축을 샀다. 한 학생이 “학교 곳곳에서 공사를 하고 있는데 통학로에 못이나 유리조각이 많아 장애 학생들에게 위험하다”고 말하자, 부총장은 “그것은 본 사람이 치우면 안되느냐”라고 답했다. 장애학생들이 알아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의미로 들릴 수 있는 말이었다.
또 다른 학생이 “학생 식당의 자판기에 음성 안내가 돼 있지 않아 힘들다”고 건의하자 “도우미 학생이 도와주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장애 학생들은 수업이나 이동할 때만 비장애 학생의 도움을 받아 식당에선 도우미 학생이 없는 경우가 많은 데 이런 실정을 전혀 알지 못한 것이다.
간담회에 참석한 한 학생은 “장애 학생을 항상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 보고, 자립권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상처가 됐다”며 “많은 학생들의 입에서 한숨이 터져 나왔고 몇몇은 화를 내기도 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A대는 지난해 교육부의 장애학생교육복지 지원 평가에서 우수 학교로 선정되는 등 장애 학생에 대한 지원이 비교적 잘 돼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대학 관계자들의 장애 학생에 대한 인식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현행법상 초ㆍ중ㆍ고교 교직원은 장애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장애인 인권침해’, ‘장애인차별금지법’에 관한 교육을 의무적으로 들어야 하지만 대학 교직원은 제외 돼 있다. 반면 장애를 가진 대학생은 지난해 8,271명에 달할 정도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 이들의 학업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형수 장애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은 “대학 관계자들에게 장애에 대한 교육이 이뤄지지 않아 대부분의 대학에서 장애 학생에 대한 이해 수준은 1980년대에 머물러 있다”며 “성교육이 필수적으로 이뤄지듯 장애에 대한 교육도 의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A대학 관계자는 “(A교는) 중증장애를 가진 학생도 많고 장애 학생들의 요구사항도 대부분 수용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다만 아직 장애 학생들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아 의사소통 과정에서 오해의 여지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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