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종전 70년 담화'에 압박될 듯
저명한 일본학자인 에즈라 보걸 하버드 명예교수를 비롯해 세계 역사학계의 흐름을 주도하는 미국 역사학자 187명이 6일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동원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공동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성명서에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에 대해 진솔한 사과와 반성을 촉구하는 내용도 담겨있다. 저명한 역사학자들의 이 같은 집단 행동은 올해 8월15일 2차대전 종전 70주년에 맞춰 이른바 ‘아베 담화’를 준비 중인 아베 총리에게 큰 압박이 될 전망이다.
역사학자들은 이날 성명에서 “20세기에 벌어졌던 수많은 전시 성폭력과 군 주도의 성매매 사례 중에서도 ‘위안부’제도는 방대한 규모와 군 차원의 조직적 관리, 일본 식민지배 지역의 어리고 가난하며 취약한 여성을 착취했다는 점에서 특히 두드러진다”고 지적했다. 또 “수많은 여성이 자신의 의사에 반해 붙잡힌 채 끔찍한 야만행위의 제물이 됐다는 증거는 명백하며, 피해자 증언에 의문을 제기하려고 특정한 용어 선택이나 개별적 문서에 집중하는 것은 피해자가 야만적 행위를 당했다는 더 큰 맥락을 놓치게 된다”고 강조했다. 2차 대전 중 일본 정부가 위안부 강제동원에 관여한 건 명백한 사실이며, 이를 부인하려는 일본 우익의 시도는 야만적 행위를 덮으려는 시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지난달 미 상ㆍ하원 합동연설을 일부 긍정평가하는 방식으로 아베 총리에게 위안부 문제와 관련, 명확한 반성과 사죄를 촉구했다. “아베 총리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와 일본이 다른 나라들에 가했던 고통에 직면하는 문제에 대해 언급한 것에 칭찬을 보낸다”면서도 “총리가 이 모든 문제에 대해 더 대담하게 행동하도록 촉구한다”고 주문했다. 이들은 이어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는 과정은 민주사회를 더 강하게 만들고 다른 나라와의 협력을 증진시킨다”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은 일본과 동아시아, 그리고 전 세계에서 양성 평등을 위한 역사적 발걸음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성명은 내용만으로는 올해 2월 미국 학자 20여명이 내놓은 성명과 유사하다. 그러나 아베 총리의 미 의회 연설 이후 미국 역사학계 전체 의견으로 간주될 정도로 많은 학자들의 동참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아베 총리 연설에 대해, 국제사회 전반의 기류가 비판적으로 흐르고 있음을 보여준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성명에 참여한 187명 학자들은 모두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일제 시기의 역사적 사실관계에 정통한 인물들이다. 이 중에는 허버트 빅스(빙엄턴대), 존 다우어(MIT대) 교수 등 퓰리처상 수상자도 포함됐다. 또 ‘한국전쟁의 기원’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브루스 커밍스(시카고대), 피터 두스(스탠포드대), 아키라 이리에(하버드대) 교수 등도 참여했다.
2월에 이어 이번에도 성명을 주도한 알렉시스 더든(코네티컷대) 교수는 “과거 고노 담화 때처럼 아베 정권이 과거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고 역사왜곡이나 정치쟁점화를 하지 말라는 직접적 호소”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워싱턴=조철환 특파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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