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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호 따라 한발 한발 자드락길, 양지꽃 각시붓꽃… 야생화가 지천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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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호 따라 한발 한발 자드락길, 양지꽃 각시붓꽃… 야생화가 지천일세

입력
2015.05.0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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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에선 발꿈치에 흙 알갱이 밟히는 소리가 난다. 봄이면 밟힌 잔풀이 다시 일어서고 가을이면 낙엽 바스러지는 소리가 난다. 발걸음은 좁은 오솔길로 한발한발 조심스러우면서도 재바른 모양새다. ‘자드락’은 ‘나지막한 산기슭의 비탈진 땅’?이라는 뜻의 명사이고, ‘자드락자드락’은 ‘자꾸 남이 귀찮아하도록 성가시게 구는 모양’이라는 부사지만 입안에 구르는 혀 놀림만으로는 영락없이 의성어고 의태어다.

충북 제천시는 2011년 청풍호(충주댐에 갇힌 호수이니 충주호가 분명한데 제천에선 굳이 청풍호를 고집한다) 주변에 7개의 걷기 길을 만들고 공모를 거쳐 ‘자드락길’이라 이름 붙였다. 그 중에서도 제6코스 괴곡성벽길은 자드락의 느낌에 가장 어울리는 길이다.

제천 자드락길6코스 괴곡성벽길 전망대에서 본 청풍호 위로 제트스키가 물살을 가르고 있다.제천=최흥수기자 choissoo@hk.co.kr
제천 자드락길6코스 괴곡성벽길 전망대에서 본 청풍호 위로 제트스키가 물살을 가르고 있다.제천=최흥수기자 choissoo@hk.co.kr

옥순봉 만큼 아름다운 소유권 다툼

괴곡성벽길은 수산면 옥순대교 남단 주차장에서 출발한다. 다불암을 거쳐 지곡리 나루터까지 9.9km, 약 4시간 코스다. 성벽길이라는 별칭이 붙어 모두들 성벽이 어디 있나 두리번거리지만 인공으로 쌓은 성벽은 없다. 청풍호에서 보면 남한강 좌우로 깎아지를 듯 솟은 봉우리들이 성벽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다. 괴곡(槐谷)은 성벽길 안쪽 마을이름에서 따왔다. 회화나무(槐) 대신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입구를 지키고 있는 마을이다.

홀아비꽃대
홀아비꽃대

다불암으로 오르는 길은 시작부터 오르막이다. 부드러운 흙 길이지만 7개 코스 가운데서도 가장 힘든 구간에 속한다. 그렇다고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약 2km를 오르는 동안 어느 정도 숨이 찰 무렵이면 어김없이 짧은 평지가 나타나 쉬어갈 수 있다. 그 사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청풍호는 더욱 깊고 넓어진다. 8부 능선쯤에서 굴곡이 멋들어진 소나무 숲길을 통과하면 오르막도 끝이 보인다. “이 길로 올라가셔야 수월하데유~, 믿어 봐유~” 특유의 능청스런 충청도 사투리 안내판을 지나면 ‘사진 찍기 좋은 명소’와 전망대가 코앞이다.

옥순대교 아래로 유람선이 녹색 호수를 거슬러 오르고 제트스키가 물살을 펼치며 뒤따른다. 오른편으로 옥순봉, 왼편으로 둥지봉 바위가 흰 이마를 드러내는 사이로 난 물길은 정면 말목산에 막혀 오른쪽으로 꺾인다. 산과 물과 다리와 유람선까지 어느 것 하나 거슬리지 않고 조화를 이룬 풍경이 웅장하고도 시원하다. 다만 봄 가뭄에 허옇게 속살을 드러낸 가장자리가 다소 안타깝다.

비 온 뒤 솟아나는 옥빛 죽순 같다는 옥순봉은 행정구역상으로는 제천 땅이지만 단양8경에도 포함되고, 제천10경에도 들어있다. 두 지역의 신경전은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퇴계 이황이 단양군수 재임시절 청풍군수(나중에 청풍군은 제천시에 편입돼 청풍면으로 위세가 줄어들었다) 이지번에게 옥순봉을 넘겨달라고 했지만 거절당했단다. 두향이라는 기생의 간청으로 부탁을 했었다니 세계적인 유학자도 미인의 청을 단칼에 자를 순 없었던 모양이다. 다행히 두 고을 군수는 친분이 두터웠던 터라 험악한 말싸움까지 가지는 않았고, 이황이 옥순봉 아래 바위에 단구동문(丹丘洞門, 단양으로 들어오는 문)이라고 점잖게 글귀를 새겨 경계를 표시하는 것으로 다툼은 일단락되었다. 현재 글귀는 청풍호 물길에 잠겨 볼 수는 없다.

전망대로 올라가는 도중 만난 소나무 숲길
전망대로 올라가는 도중 만난 소나무 숲길
자드락길 6코스 전망대에서 본 청풍호 전경. 옥순대교 위로 왼쪽이 둥지봉, 오른쪽이 옥순봉, 정면은 말목산이다.
자드락길 6코스 전망대에서 본 청풍호 전경. 옥순대교 위로 왼쪽이 둥지봉, 오른쪽이 옥순봉, 정면은 말목산이다.

야생화와 약초향기 가득한 다불리 자드락길

전망대에서 다불리로 돌아 나오는 길은 큰 경사 없이 여유롭다. 그제야 보지 못했던 들풀과 꽃나무가 하나씩 눈에 들어온다. 좁은 길 따라 샛노란 양지꽃이 지천이고, 연보라빛 각시붓꽃도 무더기로 피었다. 분홍빛 줄딸기꽃에는 호박벌 잉잉대고, 산괴불주머니와 윤판나물도 노랗게 꽃을 피웠다. 쉬 보기 어려운 큰구슬붕이도 보라꽃잎 뭉쳐 피었고, 홀아비꽃대는 하얗게 실타래를 풀었다. 바람 한 조각 스칠 때마다 분꽃나무와 더덕 향이 코를 찌른다.

다불리는 해발 고도 400m가 안 되지만 분위기는 산골오지다. 비탈진 길가로 철마다 야생화가 지천이다.
다불리는 해발 고도 400m가 안 되지만 분위기는 산골오지다. 비탈진 길가로 철마다 야생화가 지천이다.
흘러내릴듯한 비탈밭에 황정과 더덕 농사를 짓는다.
흘러내릴듯한 비탈밭에 황정과 더덕 농사를 짓는다.
길을 걸으면서 수많은 야생화와 만난다. 사진은 큰구슬붕이
길을 걸으면서 수많은 야생화와 만난다. 사진은 큰구슬붕이

전망대 아래 첫 마을 다불리는 해발 400m에 못 미치는데도 분위기는 산골오지다. 금방이라도 흘러내릴듯한 경사 급한 다락밭은 주민들이 떠나면서 절반 넘게 묵정밭이 되었다. 지금은 5가구가 남아 뿌리를 약재로 쓰는 황정과 황기, 더덕농사를 짓고 있다. 자드락길 덕택에 외지인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허물어져가던 산막은 ‘백봉 산마루주막’으로 변신했다. 마을에서 직접 담근 걸쭉한 막걸리에 취나물을 섞은 황정 부침개 한 장에 다시 걸을 힘을 얻는다.

각시붓꽃
각시붓꽃

다불리(多佛里)는 마을 뒤편 두무산 바위가 수많은 불상을 모아놓은 것 같다는 데서 유래한다. 마을 제일 꼭대기에는 작은 사찰 다불암이 있고, 자드락길은 그곳에서 두무산을 한 바퀴 돌아 이어진다. 30여분이면 충분할 만큼 짧지만 바위산이라 만만치 않다. 형제바위 독수리바위 호랑이굴 등 규모에 비해 이야기도 많이 품고 있다. 정상은 비교적 넓고 편편하다. 동쪽 끝은 소백산 기슭으로 오르는 일출감상 포인트이고, 서쪽 헬기장은 월악산 영봉 자락으로 기우는 일몰 전망대 역할을 한다.

양지꽃
양지꽃

다불암으로 되돌아 나오면 길은 지곡리 나루터로 이어지지만 출발점으로 돌아오기가 쉽지 않다. 지곡리 나루터에 미리 예약(김진양 010-8830-5836, 이승종 010-3756-5035)을 해야 배를 타고 옥순대교로 이동할 수 있다. 번거롭다면 다불리에서 괴곡리로 내려오는 길이 순탄하다. 두 마을을 잇는 도로라고는 하지만 차량 1대 겨우 지날만큼 좁은 길이다. 옥순대교 남단 주차장까지 약 3.5km, 구불구불 내리막은 산허리도 감싸고 비탈밭도 두르고 누렁이 일소가 봄볕을 즐기는 마을도 지난다. 찻길마저 느린 듯 발걸음 가벼운 ‘자드락길’이다.

제천=최흥수기자 choissoo@hk.co.kr

[여행메모]

●옥순대교까지는 중앙고속도로 남제천IC에서 약 25km다. 청풍호리조트에서부터 우측으로호수를 끼고 구불구불 커브가 심해 느린 드라이브 코스로 제격이다. 중부내륙고속도로 괴산IC에서는 약 42km 떨어져 있다. ●다불리까지도 찻길은 돼 있지만 길이 좁고 험하다. 주차장도 여의치 않기 때문에 평일이 아니면 아예 차로 접근하려는 욕심은 버리는 게 낫겠다. ●청풍호 기암절벽을 가까이서 보기에는 유람선이 제격이다. 청풍나루에서 단양 장회나루까지 왕복 1시간 20분 운행하는 유람선 이용료는 14,000원이다. ●제천시는 관광활성화를 위해 마일리지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제천여행 앱에서 여행지 QR 코드를 인증하면 500원~50,000원까지 복권 방식으로 마일리지를 적립 받을 수 있다. 마일리지를 사용할 수 있는 가맹점은 현재 45개다. 관광안내소에서 받은 스탬프 북에 관광지 도장을 찍으면 5,000원~10,000원까지 현금처럼 쓸 수 있는 기프트 카드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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