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원전도 세월호 같은 人災
그러나 양국 사후 수습방식은 차이
과거 고리 단호히 끊어 낸 日 배워야
혹자는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원인을 규모 9.0의 대지진으로 발생한 쓰나미로만 알고 있을지 모르겠다. 당시 정권을 이끌었던 간 나오토 전 총리가 지난해 발간한 회고록 ‘원전제로의 결의’를 보면 불가피한 천재(天災)라는 이런 선입견은 여지없이 무너진다.
후쿠시마 제1원전 부지는 당초 해발 35m 절벽에 조성될 예정이었으나 도쿄전력은 이 곳을 깎아 10m까지 낮췄다. 원전 냉각용수를 바다에서 끌어올리기 위한 비용절감 차원에서였다. 원래 높이대로 건설됐다면 쓰나미로 닥쳤어도 전원공급장치 기능을 상실할 일이 없었다. 대재앙은 결국 인재(人災)였다는 얘기다. 비용절감 명목으로 빼돌려진 돈은 자민당으로 흘러 들어 재집권의 자양분을 제공했고, 자민당은 보답으로 끊임없이 제기된 원전 안전문제에 눈을 감았다. 반면 인근 미야기현 오나가와 원전 부지는 후쿠시마 제1원전과 비슷한 높이였지만 이 지역출신 간부가 당초 계획보다 높이 건설토록 지시, 쓰나미의 화를 면했다고 한다.
애당초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라는 점에서 후쿠시마 원전과 세월호는 공통점이 많다. 알다시피 청해진해운은 일본에서 세월호를 들여와 수 차례 개조작업을 거쳤다. 이 과정에서 선박의 기본 조건인 복원력조차 갖추지 못한 불량선박으로 둔갑했고, 급격한 변침에 균형을 잃어 사고를 초래했다. 운항심사 인허가 과정에서 뇌물을 받은 공무원이 무리한 화물적재를 눈감아준 것도 후쿠시마 원전 사례와 유사하다.
사고 직후 갈팡질팡 대응방식도 빼 닮았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당시 현장직원들은 원전 의 비상용 복수기(ICㆍ냉각장치)에 빨간 불이 들어온 것을 보고도 원전 기능상실을 알아채지 못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원자로의 내부압력을 낮추기 위해 해수투입이 다급한 상황임에도 도쿄전력은 원전이 못쓰게 될 까봐 주저한 나머지 시기를 놓쳐 화를 키웠다. 세월호 역시 급선회로 이상징후가 발견된 직후 해경당국에 신고했으나, 관할 논란으로 초등대응시간(골든타임)을 놓쳤다. 출동한 해경의 소극적 구조에 승객을 버리고 선원이 탈출하는 황당한 대응까지 이어져 인명 피해가 커졌다.
기시감마저 느껴지게 하는 두 사고이지만 한일 양국의 사후수습 방식은 차이가 난다. 간 전 총리는 사고 직후 도쿄 인근 하마오카 원전도 지진발생시 치명적인 피해를 입을 수 있다며 즉각 가동 중단을 지시했고, 점검을 마친 원전을 재가동하려면 지역주민의 동의를 구하도록 했다. 원전 안전점검도 대폭 강화하는 등 다시는 같은 이유로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진력했다. 이 때문에 일본은 지금껏 ‘원전제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오랜 야당 처지로 전력회사의 뇌물공세에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민주당 정권이었기에 가능했다. 전력회사의 뇌물을 자양분 삼아 세력을 키운 자민당의 아베 신조 총리는 아베노믹스를 내세워 틈만 나면 원전 재가동의 불가피성을 역설하고 있으나, ‘안전 우선’의 대전제에 밀려 힘을 얻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사고 이후 응당 해야 할 면밀한 원인분석 및 광범위한 구조개혁은 발도 떼지 못한 채 그저 국민분열로만 치달아온 우리의 현실과는 너무 다르다.
그나마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를 설치해 사고원인서부터 수습, 후속조치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과 책임소재를 명백히 밝히자는 특별법 제정은, 뒤늦었어도 근본적인 구조개혁을 위한 첫 시도다. 하지만 국무회의가 6일 통과시킨 시행령을 두고 특조위와 유가족의 반발이 도무지 누그러들지 않고 있다. 위원회 핵심 보직에 공무원을 파견하고, 특조위 업무범위도 현장 사고상황에만 한정시킨 때문이다.
상식적 시각으로 봐도 공무원 권한을 줄이고, 세월호에 국한되지 않는 안전한 사회건설을 위한 종합대책이 필요하다는 특조위의 주장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더욱이 규제완화 논리로 안전을 소홀히 한 이명박 정부와의 고리를 끊겠다고 누누이 천명해온 박근혜 정부라면 더더욱 그렇다. 과거의 고리를 단호하게 끊고 믿을만한 안전시스템을 구축한 일본정부의 대응은 이런 점에서 곱씹어볼 만하다.
한창만 논설위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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