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먼저 보내면 가족 입국 쉬워"
유인 후 리비아 도착하면 돌변
부모에 수천달러 몸값 요구 횡행
伊도착 난민 17만명 중 1만3,000명
보호자 없이 혼자 여행하는 아동
홍해와 맞닿은 동아프리카 작은 나라 에리테리아. 독재국가인 이곳의 8세 소년 헤르몬은 ‘유럽에서 새 삶을 살 수 있다’는 남성의 꼬임에 넘어가 유럽으로 향하는 교두보, 리비아로 향하는 트럭에 홀로 몸을 실었다. 그러나 리비아로 도착하자 그 남성은 인신매매범으로 돌변해 헤르몬의 가족에게 수천달러의 몸값을 요구했다. 내전으로 극도의 혼란상태인 리비아에 외따로 떨어진 아들을 포기할 수 없었던 가족들은 피 같은 돈을 토해내야 했다.
뉴욕타임스는 유럽행을 택하는 아프리카 난민들의 위험한 여행에는 인신매매단의 꾐에 빠져 홀로 고향을 떠난 아동들이 대거 포함돼 있다고 5일 보도했다. 인신매매단은 “자녀를 먼저 유럽에 보내 놓으면 가족들이 뒤따라 유럽에 입국하기가 쉽다”며 “관련 비용은 가족이 유럽에 도착한 후 받겠다. 선금 없이 아이만 유럽으로 보내라”고 가족들을 유인한다. 이후 아이가 홀로 리비아에 도착하면 부모에게 몸값을 요구해 돈을 뜯어내는 것이다. 에리트레아의 국민 평균소득이 약 550달러(약59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약 3,000달러 (약320만원)이상인 몸값을 지불하기 위해서는 전 재산을 내놓아야 한다. 에리트레아인들을 돕는 활동가 메론 에스테파노스는 “인신매매단이 자녀를 리비아로 데려간다면 부모는 돈을 보내주는 것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왜냐하면 다시 돌아올 길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제이주기구에 따르면 지난해 리비아에서 해로로 이탈리아에 도착한 17만명의 난민 중 1만3,000명 이상이 보호자 없이 혼자 여행하는 아동들이었으며 이중 3,394명이 에리트레아 출신이었다.
수십 명의 난민들과 함께 트럭 뒷칸에 탄 헤르몬은 수단에 가서야 가족과 처음으로 연락을 취할 수 있었다. 헤르몬은 비슷한 경로로 아프리카를 탈출해 노르웨이에 망명을 신청한 누나에게 연락을 취했다. 헤르몬의 여행의 위험성을 안 누나가 그에게 수단에 남거나 돌아갈 것을 간청했으나, 홀로 수단에 남는 것이 두려웠던 헤르몬은 결국 리비아로 향했다.
아동들을 리비아로 데리고 간 인신매매단은 난민들을 지중해로 보내는 난민선과도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헤르몬을 데리고 리비아로 간 남자는 2013년 람페두사 해안에서 난민선이 침몰해 366명의 난민들이 익사한 사건에 연루돼 이탈리아 경찰이 수배한 사람이었다.
리비아에 도착한 인신매매단은 헤르몬을 가두고 그의 누나에게 리비아로 오는데 든 경비로 1,600달러(약170만원), 그리고 지중해를 건너는 보트 비용 1,600~1,800달러를 요구했다. 4주간 친구와 가족에게 구걸해 돈을 마련한 누나가 몸값을 치르고 헤르몬은 가까스로 지중해를 건너는 난민선에 올랐으나, 배의 엔진이 꺼지면서 그들은 모두 체포되고 말았다.
현재 리비아의 구금센터에 다른 에리트레아 아동들과 함께 갇혀있는 헤르몬은 어떠한 교육도, 제대로 된 보살핌도 받지 못하고 있다. 에리트레아에 있는 가족과도 이 시설을 방문한 저널리스트의 도움으로 간신히 연락이 됐다. 많은 난민들이 인신매매단의 꼬임에 넘어가 고향을 떠났지만 에리테리아 당국은 이들을 도망자, 범죄자 취급하며 귀환을 거부하고 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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