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넘은 서양 클래식 음악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곡가는 누구일까.
빅데이터가 내놓은 정답은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다. 자그마치 1,500여명의 다른 작곡가와 음악적 유사성을 보이는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는 6일 “문화기술대학원 박주용 교수 연구진이 중세 르네상스 시대부터 현대까지의 서양 클래식 음악이 담긴 음반 6만4,000장의 빅데이터를 이용해 작곡가 약 1만4,000명의 네트워크를 구현해냈다”고 밝혔다. 문화 분야를 대상으로 한 세계 최대 규모의 빅데이터 분석으로 꼽힌 이번 연구결과는 ‘유럽 물리학 저널 데이터 사이언스’ 4월 29일자에 하이라이트 논문으로 소개됐다.
연구에 활용된 빅데이터 출처는 서양 클래식 음반 정보 제공 웹사이트 ‘아카이브뮤직’과 음악가 인적 정보 제공 사이트 ‘올 뮤직 가이드’다. 연구진은 컴퓨터 알고리즘으로 이들 사이트에 등록된 6만4,000장의 클래식 음반 CD를 분석해 같은 CD에 실린 음악 작곡가를 서로 연결하는 방식으로 1만4,000명의 작곡가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한 음반에 서로 다른 작곡가의 음악이 함께 실렸다는 것은 해당 작곡가들 간 스타일이나 주제, 기법 등 어떤 측면에서든 음악적 유사성이 있기 때문이라는 추정을 전제로 한 네트워크다.
완성된 네트워크에서 다른 작곡가와 가장 많이 연결돼 있는 사람이 바로 바흐로, 1,551명과 네트워크를 이뤘다. 전체 작곡가의 연결 횟수 평균이 15명인 것과 비교하면 100배가 넘는다. 그만큼 다른 작곡가들과 시대를 초월하며 음악적 유사성을 공유하거나 영향을 주고받았다는 의미다. 바흐 다음으로 영향력을 발휘한 작곡가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로 작곡가 1,086명과 연결됐다. 그 뒤는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과 요하네스 브람스, 펠릭스 멘델스존이 차례로 이었다.
연구진은 이 네트워크를 재분석해 특정 작곡가와 작곡가가 서로 연결되기까지 평균 3.5명을 거친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동시대를 살지 않았거나 개인적으로 서로 알지 못했던 작곡가들끼리도 평균 3, 4명만 건너면 서로 음악적 유사성을 보이거나 영향을 주고받았다는 뜻이다.
이어 연구진은 이들 네트워크 중 일부가 끼리끼리 뭉쳐 있다는 사실을 포착해 이를 서양 클래식 음악사에 등장하는 사조와 비교해봤다. 그 결과, 고전파 낭만파 현대파 등 기존 학문의 사조 구분과 거의 일치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를테면 프랑스의 드뷔시는 19세기 낭만파와 20세기 현대파 작곡가들과 고루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다. 실제로 드뷔시는 서양음악사에서 새로운 시대를 여는 다리 역할을 한 작곡가로 평가 받아 왔다.
또 유럽 중심으로 클래식 음악이 발달했던 중세를 지나 현대음악으로 넘어온 뒤에는 미국 작곡가들의 영향력이 두드러지기 시작한 경향이 네트워크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때문에 현대음악 작곡가 네트워크는 크게 미국파와 비미국파(주로 유럽파)로 각각 뭉친 형태로 나타났다.
연구를 주도한 박주용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는 “창작자가 다른 창작자들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새로운 스타일이 등장하고 발전하는 문화의 중요한 특성이 잘 드러났다”며 “이번 네트워크 분석을 바탕으로 미래 음악사에선 유명 작곡가들에게 영향력이 더욱 집중되는 양상을 보일 거라고 예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대규모 데이터나 네트워크에서 의미 있는 패턴을 찾아내는 최신 연구분야인 ‘복잡계 과학(네트워크 과학, 데이터 과학)’은 복잡한 사회현상을 해석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새로운 도구로 각광받고 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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