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 들러 대파 한단을 사다 놓을 때가 있다. 늘 느끼는 거지만 양이 너무 많다. 금세 마르고 상해서 다 먹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겨울 동안엔 그나마 상한 부분만 잘라내고 찌개 따위를 끓일 수 있었지만, 봄이 오고 나선 곤란해 하던 참이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 주방 한편에 방치해뒀던 대파 끄트머리에 꽃이 자라난 걸 우연히 발견했다. 손가락 끝 마디 정도 자란 세 송이를 줄기까지 잘라 작은 병에 물과 함께 담아놓았다. 이게 성장속도가 매우 빠르다. 하루 한번 물만 갈아줘도 밤새 다른 모양, 다른 크기다.
평소 색감이 짙거나 크기와 모양이 요란한 꽃은 징그러워하는 편인데, 파꽃은 그런 느낌이 없다. 연두색 줄기 끝에 하얗고 보송보송 하게 자란 생김새에서 모종의 수줍음과, 여리지만 튼튼한 결기 같은 게 느껴진다. 가만히 어떤 얘기를 듣다가 별 큰 소리 없이 표정만으로 파안대소하는 누군가의 선한 얼굴이 연상되기도 한다. 맵고 시린 파의 맛을 떠올리면 다소 의외인 듯싶다가도, 처음 만난 사람의 맵고 쓰라린 심사가 어느 결곡한 단계를 지나면 곱고 온화한 본성으로 보다 선연하게 확인되는 걸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된다. 문득, 마음속에 숨겨둔 흙밭 같은 게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한다. 쓰라림 뒤에 건네게 될 나지막하고 푸른 음성 같은 게 내 목젖 아래에서 봉오리를 열게 되지 않을까 하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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