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 빨던 시절은 끝났다. 곧 나 혼자 산다. 부모님은 쭉 서울에 사셨고, 나 역시 그 동안 계속 서울에서 생활한 터라 이 나이 먹도록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최근 부모님이 집을 팔고 두 분이 거주할 작은 집을 새로 계약했다. 나는 쫓겨난 셈인데, 다행인 점은 부모님이 퇴거명령을 내리며 얼마간 돈을 쥐어주셨다는 사실.
그리하여 얼마 전 서울의 한 원룸을 계약했다. 전용면적이 5평 채 안 되는 방이다. 가진 돈에 맞춰 방을 구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초라한 기분은 들고 싶지 않아 최대한 멋지게 꾸미고 살겠다고 다짐했다. 최근 가장 많이 시간을 쏟은 것은 다른 사람들의 셀프 인테리어 사진을 구경하고, 인터넷 쇼핑몰에서 가구를 검색해보는 일이었다.
하지만 입주할 공간을 줄자로 정확히 재고 나니, 몇몇 사진처럼 여백의 미가 돋보이는 모던한 공간, 오직 멋을 내기 위한 소품이 크게 자리를 차지하는 인테리어는 내게 사치라는 것을 깨달았다. 염두에 둬야 할 것은 첫째도 수납, 둘째도 수납, 셋째도 수납. 물건을 차곡차곡 높게 쌓을 수 있는 깊고 높은 선반, 한 뼘의 벽면도 낭비하지 않는 틈새장(이전에는 30㎝의 소중함을 미처 몰랐다!), 의자로 쓸 수 있고 물건도 담을 수 있는 다용도 스툴을 구매했다. 가구 색상은 죄다 팽창색인 흰색. 그렇게라도 내 눈과 뇌를 속이기로 했다. 내 방은 좁지 않아!
이번 독립 준비는 이케아의 인기 이유를 실감하는 계기이기도 했다. 지금 계약한 공간에서 최대 2년 정도 살 것이다. 다음 이사는 그리 먼 일이 아니다. 이사의 편의성을 염두에 두게 된다. 이케아는 이동이 편하고 가벼운 조립식 가구를 폭넓게 보유하고 있는 브랜드다. 다른 소품과 조화가 쉬운 단순하고 현대적인 디자인으로도 유명하다(저 이케아 알바 아닙니다). 좁은 공간에서 혼자 살며 나름 멋을 내고 싶은 사람들에게 여러 모로 매력적이다. 덕분에 ‘따라쟁이’들이 많이 생겼다. 온라인 쇼핑몰을 검색해보니 이케아의 디자인과 비슷하면서 그보다 저렴한 조립가구 브랜드가 눈에 띄었다(그 중에는 심지어 이케‘알’이라는 브랜드도 있었다. 이거 너무 노린 이름 아닙니까). 나도 그 중 하나를 샀다.
가구 선택보다 더 중요한, 본질적인 문제가 남아있다. 좁은 공간을 넓게 쓰는 방법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은 물건을 적게 소유하는 것. ‘버림의 미학’을 실천할 때다. 스스로 소유욕이 강한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오판이었다. 이삿짐을 싸다 보니 존재 사실을 잊고 있던 물품이 수두룩했다. 이제까지 잊고 있던 존재라면 앞으로도 없이 살 수 있을 터, 과감히 버리기로 했다. 1년 이상 입지 않은 옷도 처분했다.
가장 어려운 것은 책을 줄이는 일이었다. 왠지 책을 (읽지 않고)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책이 담고 있는 지식을 소유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책장을 비우는 대신 머리를 채우기로 결심하며 일부는 중고책방에 팔고, 일부는 지인에게 증여했다. 그래도 선반 한 칸에 진열할 해피밀 피규어, 레고 블록, 여행 기념품들은 남겨뒀다. 여기가 내 힐링존이다. 딱 선반 한 칸 정도의 사치다.
쾌적한 삶을 위해, 앞으로 세간을 더 늘이지 않으련다. 물건 하나를 산다는 것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것 하나를 버린다는 뜻으로 여기며 가지고 있는 물건의 총량을 유지하겠다고 다짐한다. 이것은 내 살림살이에 보탬이 되는 태도며, 더 나아가 너무 많은 소비와 소유를 권하는 세상에 저항하는 윤리적 실천일 수 있…다고 말하면 거창한가? 진실은, 2년 동안 더 넓고 더 좋은 방이 요구하는 보증금은 더욱 상승할 것이고 나는 그걸 감당할 정도로 돈을 모을 자신이 없으니 욕망을 구조조정 하겠다는 것. 좋은 사람과의 만남과 대화, 영감을 주는 공간으로의 여행 등 ‘수납’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배움과 경험으로 삶을 인테리어 하련다.
최서윤 ‘월간잉여’ 발행ㆍ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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