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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시 파켓] 이탈리아에서 '한국인'임을 느끼다

입력
2015.05.0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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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이탈리아에 다녀왔다. 제3국(성인으로서 이미 오래 살고 있는 한국도, 고향 미국도 아닌)에 머문다는 것은 내 정체성에 혼란을 가져오는 일이다.

한국에 있을 때 나는 미국인임을 느낀다. 사람들은 서울에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 "이제 한국사람 다 됐네요"라고 말하지만 솔직히, 한국 생활은 '제2외국어'로 말하는 어색함과 내가 자란 곳과 매우 다른 사회를 탐험해야 하는 도전의 연속이다. 18년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미국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탈리아 같은 나라에 가면, 갑자기 한국인처럼 느끼기 시작한다. 무심결에 나는 스스로를 마치 한국인인 것처럼 이야기 하기 시작한다. 내가 스마트폰으로 방대한 데이터에 접속하면 유럽 친구들은 놀라워 하는데, "나 같은 한국인들은 24시간 인터넷 연결이 인간의 기본권이라 생각하지"라고 대답하곤 한다. 거리에서 한국어로 말하는 낯선 사람을 보면, 그들에게 다가가 "안녕하세요, 나도 한국사람이에요"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과 싸워야만 한다. (실제로 그랬다면 그들이 어떻게 반응했을지 궁금하긴 하다.)

사실, 친구들은 나를 한국인처럼 보는 것 같다. 2년 전 일본 홋카이도에서 열린 유바리 판타스틱영화제에 간 적이 있다. 일본인 친구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쪽은 달시. 몇 년 동안 서울에 살고 있고 한국인과 결혼했어요. 한국 영화에 대해 글을 쓰고 가르치고 있어요"라고 소개하지 않는다. 그냥 "달시는 한국인이에요"라고 말한다. 이상하게도, 듣기 좋은 말이다.

생각해보면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도 모르는, 이상한 사람 같다. 그러나 지난 달 우디네 극동영화제 같은 행사에서 나처럼 이상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일본 영화 프로그래머인 마크는 1975년부터 일본 도쿄에 살고 있는 미국인이고, 중국 영화 프로그래머 마리아는 1998년부터 베이징에서 살고 있는 이탈리아인이다. 마크는 일본인처럼 보이지 않지만, 그가 이야기하는 방식에는 일본인 같은 뭔가가 있다. 마리아는 아직 이탈리아인처럼 말을 하지만, 그녀 역시 막연하지만 중국인 같은 뭔가가 있다.

우디네에서는 또한 삶의 상당 부분을 이탈리아에서 보낸 한국인들과도 마주친다. 그들은 영화제에서 번역 및 어시스턴트 등으로 일하고 있다. 그들과 이야기하는 것은 이상한 경험이다. 나는 미국인처럼 보이지만 한국인처럼 행동하고, 그들은 한국인처럼 보이지만 이탈리아인처럼 행동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의 본질을 잃어버린 걸까?

중요한 건 그들이 단순히 주위의 이탈리아인을 모방하거나 맞추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의 '이탈리아인스러움'은 허식이 아니라 그들이 이미 이탈리아인이 됐다는 정직한 표현이다. 오랜 이탈리아 생활 속에서 문화는 피부 속으로 스며들었고, 그들 중 일부는 이미 변해버렸다.

문화라는 게 영원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부분적으로만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DNA처럼 각인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단순히 벗어서 바꿀 수 있는 재킷 같은 것도 아니다. 가장 좋은 비유는 아마도 '수년 간 바다에서 부드럽게 만들어진 조약돌'과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문화가 흥미로운 건 일정 부분 선택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문화가 나를 선택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대학시절, 나는 러시아어를 전공했다. 7년간 정말 열심히 러시아어를 공부했고, 러시아로 세 번의 여행을 떠났다. 한 번 갈 때마다 3~4개월씩 체류했다. 러시아 소설과 연극을 보고, 또 역사를 공부했다. 러시아에서 친구도 생겼다. 하지만 7년만에, 내가 러시아를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또 다른 문화에 강한 관심이 생긴 건 아니었다. 그것은 내 몸 내부에서의 반응 같았다. 러시아에서 더 시간을 보낼 수 있었지만, 내 안의 뭔가가 (문화가 주는) 깊은 변화를 거부했다.

얼마 후, 나는 2년 만 머물겠다는 생각으로 서울로 왔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일 수 있지만, 한국이 내게 훨씬 잘 맞는다는 걸 깨달았다. 이미 오래 전에 나는 다른 나라에서의 구직을 중단했다. 난 새로운 커리어를 쌓기 시작했고 결혼도 했다. 한국에서 편안하게 사는 방법도 배웠다. 그리고 이후 한국의 문화가 내게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기 시작했을 때에도, 내 몸은 저항하지 않았다.

사람에게 문화란 아마도 수년 간 바다에서 부드럽게 만들어진 조약돌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게티이미지뱅크
사람에게 문화란 아마도 수년 간 바다에서 부드럽게 만들어진 조약돌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게티이미지뱅크

[원문]

Feeling Korean in Italy

Last month I went to Italy. There’s something about being in a third country -not Korea, where I’ve lived much of my adult life, and not my home country the US- that does strange things to my sense of identity. When I’m in Korea, I feel like an American. People may see me living happily in Seoul, and say to me, “Now you’ve become a Korean!” But honestly, every day I feel the awkwardness of speaking in a second language, and the challenge of navigating through a society very different from the one where I grew up. After 18 years, I still feel like an American.

But for some reason when I go to a country like Italy, I suddenly start to feel Korean. If I’m not careful, I start talking about myself as if I were Korean. When my European friends express surprise that I have unlimited data access on my mobile phone, I reply, “For Koreans like me, 24-hour internet connectivity is a basic human right.”

When I hear strangers speaking Korean on the street, I have to resist the urge to walk up to them and say, “Hi, nice to meet you! I’m Korean too.” (I wonder how they might react if I actually did?)

Actually, my friends seem to view me the same way. A couple years ago I traveled to the Yubari Fantastic Film Festival in Hokkaido, Japan. My Japanese friend introduced me to some other people, and rather than say, “This is Darcy, he’s been living in Seoul for many years, is married to a Korean, and now he makes his living writing and teaching about Korean films,” she just said, “This is Darcy. He’s Korean.” Oddly, hearing that put me in a good mood.

I guess I’m a strange person, who deep inside my heart don’t really know what country I’m from. But one of the nice things about being at an event like the Udine Far East Film Festival, where I was last month, is that there are plenty of other strange people like me. Mark, who helps the festival select Japanese films, is an American who has been living in Tokyo since 1975. Maria, who helps the festival select Chinese films, is an Italian who has been living in Beijing since 1998. Mark doesn’t look Japanese, but there’s something Japanese about the way he talks. Maria still speaks like an Italian, but there’s something vaguely Chinese about her as well.

In Udine I also come across Koreans who have been living in Italy for a significant portion of their lives. They work for the festival as translators and assistants. Talking to them is a strange experience, because I look American but act Korean, and they look Korean but act Italian. We sort of cancel each other out.

The thing is, it’s not that they are simply imitating the Italians around them, or trying to fit in. Their “Italian-ness” is not an affectation, it’s an honest expression of who they have become. After years of living in Italy, the culture has seeped into their skin, and some part of them has been transformed.

What is this thing called culture, that looks permanent, but in fact is only partly so? It’s not like DNA, imprinted upon you at birth and never changing. But neither is it like a jacket that you can simply take off and exchange for another. Perhaps the best comparison is to the ocean, which after years and years can wear the edges of a pebble smooth.

The interesting thing to me about culture is that on some level, it can be chosen. But there are times when it seems that the culture chooses you. When I was a university student, I majored in Russian. I spent seven years studying the language as hard as I could, and took three trips to Russia, staying 3-4 months each time. I read Russian novels and plays, and studied its history. I made friends in Russia. But towards the end of those seven years, I began to feel that I needed to go. It wasn’t that I had suddenly developed a stronger interest in another culture. Instead, it felt like a reaction inside my body. I could spend time in Russia, but something in me rejected the deeper changes that the culture was having on me.

Not long after, I moved to Seoul, intending to stay only a couple years. But though it made no sense, I found that for me, Korea was a better match. Before long I had stopped looking for job offers in other countries. I started a new career, and got married. I learned how to live comfortably in Korea. And later, when Korean culture began to exert more fundamental changes on me, my body didn’t res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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