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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성완종, 그리고 김영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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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성완종, 그리고 김영란법

입력
2015.05.0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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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뉴시스 자료사진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뉴시스 자료사진

경남기업이 세 번째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갈 무렵인 2013년 가을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금융당국과 채권단 인사들을 수 차례 만났다고 한다. 그는 국회의원이었고, 피감기관으로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을 둔 정무위원회 소속이었다. 당시 워크아웃 담당 금감원 국장은 아예 의원회관 사무실을 직접 찾아가 성 전 회장을 만나기도 했단다.

성완종이 부른다고 어떻게 날름 달려갈 수 있느냐는 날 선 지적에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하지만, 꼭 그렇게 볼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우리 현실에서 “정무위원이 만나자는데 어떻게 거절을 할 수가 있겠느냐”는 그들의 항변이 전혀 틀린 말은 아닌 탓이다. ‘갑’, 그것도 ‘슈퍼 갑’이 면담을 요청하는데 거절을 할 수 있는 ‘을’이 얼마나 될까 싶으니 말이다. 만나서 어떤 청탁이 이뤄졌고, 그 청탁을 어떻게 처리했는지를 따지는 건 수사기관의 몫이겠지만, ‘성완종 다이어리’에 등장하는 면담 일정만을 가지고 섣불리 결과를 단정하긴 어렵다는 생각이 든 것도 그래서다.

국회 상임위원회는 대학의 전공학과와 흡사하다.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 자신이 전문성을 쌓아보고 싶은 분야의 학과를 선택해야 한다지만 그건 공자님 말씀일 뿐이다. 현실에서 대학의 인기학과, 비인기학과를 가르는 기준은 취업률이다. 취업 수요가 많은 학과는 경쟁률이 치열하고, 그렇지 못한 학과는 찬밥 신세다. 이공계가 펄펄 나는 반면, 인문계 90%는 논다는 ‘인ㆍ구ㆍ론’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다.

상임위도 비슷하다. 당위론적으로만 따지자면, 국회의원 개개인의 전문분야가 상임위 선택의 최우선이 돼야 한다. 허나 현실이 어디 그런가. 한 전직 국회의원의 말은 냉소적이다. “먹을 게 많아야 권력도 강해지는 거 아니겠습니까?”

인기 상임위의 경쟁률은 대학 인기학과만큼이나 치열하다. 경제분야에서 전통적으로 인기 상임위는 기획재정위였다. 기재위는 경제부처의 컨트롤타워인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국세청 등을 다룬다. 나라 경제를 거시적으로 조망하는 곳이니, 그 역할과 중요성으로만 보자면 지금도 가장 막중할 수 있다. 그럼에도 기재위는 소위 인기 상임위에서 밀려난 지 오래다. 기획재정부에서 떨어져나간 금융위원회와 산하 금융감독원이 정무위원회에 편입된 탓이다. 건설사들을 밑에 두고 있는 국토교통위, 이 땅의 수많은 학부모와 교직원 유권자들을 든든한 백그라운드로 하고 있는 교육문화체육관광위 등이 요즘 잘 나가는 인기 상임위인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다.

정무위원의 힘이 닿을 수 있는 곳은 셀 수 없이 많다. 금융회사 인사철이 되면 이들의 인사 청탁이 뭉텅이로 쌓인다고 한다.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들마다 “인사청탁하면 일벌백계하겠다”고 직원들을 향해 엄포를 놓지만,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믿진 않는다. 설령 정말로 그런 의지를 가지고 있다 해도, 힘 센 사람들의 민원을 모두 다 물리치는 ‘용감한 CEO’는 거의 없을 거란 생각에서다.

먹이 사슬의 고리는 분명하다. 정무위원이 부르는데 금융당국 인사가 달려가지 않을 수 없듯, 금융당국에서 부르는 데 모른 척 할 수 있는 금융기관 인사들도 없다. 그리고 금융기관은 부실기업들의 목줄을 쥐고 있다. 그러니 성 전 회장이 그렇게 악착같이 정무위원 자리를 꿰차려고 했을 것이다.

내년 9월부터 시행되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은 유독 국회의원에 대해서만큼은 폭 넓은 예외를 인정한다. 15개 유형의 부정청탁을 금지하면서 선출직 공직자(그러니까 국회의원)의 경우엔 공익적인 목적으로 제3자의 고충 민원을 전달하거나 법과 정책의 개선을 제안하는 행위를 당당히 처벌 예외조항으로 뒀다. 피감기관의 민원이든 뭐든 포장만 잘 하면 공익 목적으로 둔갑하지 못할 게 어디 있을까 싶다. 김영란법 이후에도 인기 상임위의 위세는 수그러들지 않을 거라고 생각되는 이유다.

이영태 경제부장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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