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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 자체가 불법… 5월이 더 슬픈 이주아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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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 자체가 불법… 5월이 더 슬픈 이주아동들

입력
2015.05.0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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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체류 노동자 자녀 최대 2만명

교육·의료 등 인권 사각지대 놓여

"국제사회 수준으로 보호를" 목소리

5일 경기의 한 중소도시에 사는 A(11)군은 엄마와 함께 집에서 TV를 보며 어린이날을 보냈다. 부모의 손을 잡고 놀이공원이나 공연장 등을 찾는 또래 친구들이 부러울 법도 하지만 “엄마랑 이렇게 있는 게 좋다”며 미안해하는 엄마를 되레 위로할 정도로 의젓했다.

A군은 필리핀 아빠엄마를 둔 이주민 가정의 아이다. 15년 전 돈을 벌기 위해 한국으로 온 엄마 S씨는 같은 필리핀 출신의 남편을 만나 형과 A군을 낳았다. 필리핀 학교에 진학한 형을 위해 지난해 아빠가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현재는 엄마와 단 둘이 지내고 있다. 식당 등에서 일하며 홀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는 엄마는 비자가 만료된 지 오래다. 언제 단속돼 추방될지 모른다는 조마조마한 삶에 지쳐 올해 안에는 한국을 떠날 생각을 하고 있지만, A군은 필리핀으로 가는 게 싫다.

엄마 S씨는 “필리핀에서 큰 아들을 돌보던 시어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남편이 귀국했다”며 “우리도 이 생활을 청산하고 돌아가려 하는데 작은아들 녀석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했다.

A군이 필리핀으로 가기 싫어하는 데는 이미 익숙해진 말과 글, 음식, 학교, 친구들 때문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10여 년을 지내면서 ‘한국인’이 돼 버린 것이다. S씨는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참치김밥이랑 김치”라며 “아들은 필리핀 음식도 못 먹고 필리핀어도 못한다”고 했다.

자신의 정체성을 ‘한국인’으로 여기는 A군은 그러나 커가면서 가족이 한국에서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상처를 받고 있다. S씨는 “어느 날 학교에 다녀온 아이가 ‘엄마 나는 왜 ‘등록’이 없어요?’라며 묻는 데 가슴이 찢어졌다”며 울먹였다. 한번은 길을 걷다 경찰이 다가오자 “엄마, 폴리스(경찰), 폴리스가 와요. 빨리 가요”라며 아이가 손을 이끌어 함께 뛴 적도 있었다.

5년여 전 A군의 초등학교 입학 과정도 순탄치는 않았다고 S씨는 전했다. 부모가 모두 불법 체류자인 경우에도 학교장 재량으로 입학은 할 수 있지만, 한국말이 서툰 S씨가 일 처리를 하기엔 무리가 있었던 것이다. A군은 딱한 처지를 알게 된 ‘의정부 엑소더스(이주노동자상담소)’관계자가 직접 학교 교감에게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보장된 권리를 얘기하며 설득한 뒤에야 입학할 수 있었다.

A군 등 국내에 불법 체류 중인 이주 노동자들의 자녀들이 아동인권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들은 한국 땅에 살고 있지만 ‘없는 존재’이자 ‘존재 자체가 불법’으로 돼 있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국내 불법체류 외국인은 20만8,778명이나 미등록 이주아동이 얼마나 되는지는 공식 통계가 없다. 인권단체들은 최소 5,000명에서 최대 2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아이들은 의료급여 대상이 아니어서 병에 걸려도 민간 의료구호단체의 지원으로 근근이 치료를 받는다. 보험 가입 또한 안 되기 때문에 장거리 이동이 필요한 단체 활동에 제약도 크다. 주민번호가 없어 학교에 다니는 것도 쉽지 않다. 부모가 단속에 걸려서 강제 추방 명령이 내려지면 함께 쫓겨나기도 한다. 최근 파주에서는 불법 체류하던 필리핀 출신의 어머니(42)를 따라 초등학교 5학년인 딸까지 강제 추방당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인권단체들은 비등록 이주민이란 이유로 이처럼 아이의 보육료와 양육비 등을 지급하지 않는 것은 우리나라가 비준한 유엔아동권리협약 규정을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부모의 국적과 인종, 불법 이주 여부와 관계 없이 어린이는 기본적 인권을 누려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와 달리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불법체류’ 중인 가정의 ‘미등록 이주아동’들도 그 나라와 사회로부터 아동으로서 보호받을 권리를 누리고 있다.

인권단체들은 아동만큼은 안정적인 생활을 하게 하는 등 국제 수준으로 이주아동의 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국회에는 이미 한국에서 태어난 불법 체류자 자녀의 출생 신고를 가능하게 하는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안’등이 발의돼 있는 상태다.

인권단체의 한 관계자는 “이주노동자 대부분이 어렵게 살아가는 데다가 그 자녀들은 부모의 신분상의 굴레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다”며 “어린이들이 학교와 병원에는 편히 다닐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명식기자 gij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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