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이 귀했던 1970년대에는 신축주택에 상수도를 놓으려면 돈 봉투가 필요했다. 신축주택이 급증하면서 상수도 개설을 신청한 가정이 많았지만 수도사업소의 능력과 인원은 한정되어 있으니 경쟁이 치열해진 것이다. 때문에 상수도를 놓으려면 최소 몇 개월이 걸렸다. 그 동안 동네 우물이 있는 집에서 매일 양동이로 물을 길어다 음식을 만들고 몸을 씻고 빨래도 하려니 보통 힘겨운 일이 아니었다. 기다리다 못해 동네 수도사업소 직원에게 두툼한 돈 봉투를 건네면 순서를 건너뛸 수 있었다.
▦ 물 귀한 것을 진작 알았던 지역이 중동일 것이다. 중동은 물보다 석유가 많은 지역이다. 1970년대 석유파동이 세계 경제를 강타했을 때 중학교 지리선생님의 말씀이 우스갯소리처럼 들려 긴가민가하던 기억이 있다. 중동에서는 물값이 석유값보다 비싸다는 믿지 못할 얘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도 생수가격이나 석유가격이나 도긴개긴이다. 편의점에서 생수가 500㎖짜리가 통상 800원이니 1ℓ에 1,600원꼴이다. 요즘 휘발유가격도 1ℓ에 1,500원 수준이다.
▦ 상수도 시설이 없던 시절에는 물장수가 있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등에 따르면 서울에 물장수가 나타난 것은 1800년 초다. 물장수들은 깨끗한 샘물을 퍼서 이른 새벽부터 가정에 공급했다. 당시 물장수는 주로 함경도 사람들로 이중 북청 사람들이 유독 많아 김동환의 ‘북청 물장수’라는 시가 나온 배경이 됐다. 당시 서울의 위생ㆍ청결 상태가 극히 불량했기 때문에 먹는 물만큼은 물장수에게 의존했다. 물장수들은 나중에 수상(水商)조합을 형성해 독점적인 영업권까지 행사했다.
▦ 중국의 물 시장이 연간 100조원 규모에 이르는 만큼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를 계기로 시장 선점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주장에 솔깃해진다. 한국무역협회는 “한중 FTA로 관련 품목에 대한 관세가 철폐됨에 따라 한국이 다른 경쟁 국가들에 비해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상ㆍ하수도 기술 분야에서는 일본, 독일, 미국 업체들이 경쟁자들이지만 중국과 FTA 발효를 앞둔 곳은 우리뿐이라 시장선점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앞으로 중국에서 ‘서울 물장수’가 재현될지도 모를 일이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