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ㆍ中 대립ㆍ충돌 지나친 과장 경계
시진핑, 아베 만난 건 대국적 차원
국제관계 모순 많고 단순하지 않아
사안별로 이익에 따라 판단해야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상무위원이기도 한 자칭궈(賈慶國ㆍ59) 중국 베이징(北京)대 국제관계학원장은 5일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지난달 인도네시아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만나기 전 이러한 사실을 한국에 미리 통보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는 중일 관계 개선 분위기를 우리나라 외교 당국에서 미리 인지했었다는 이야기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중남미 순방을 떠났다.
미국 코넬대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쳐 미ㆍ중 문제에 균형된 시각을 갖춘 것으로 평가 받는 자 원장은 “미중 관계는 전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관계”라며 “한국은 사안별로 스스로의 이익에 따라 판단하면 되지, 미중 어느 한 쪽만을 선택할 필요는 없다”고 조언했다. 자 원장은 특히 미중 관계의 대립과 충돌을 지나치게 과장하는 것을 가장 경계해야 할 일로 지적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_미국과 일본이 최근 방위협력지침을 개정하는 등 동맹을 강화하고 있다.
“미일 관계를 ‘신밀월’이라고 하지만 미일 관계는 이전에도 밀접했다. 물론 최근 몇 년간 더 가까워진 것도 사실이다. 미국은 중국의 성장이 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이익에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으로서는 이 지역의 관리와 통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일본도 중국과의 댜오위다오(釣魚島ㆍ일본명 센카쿠 尖閣) 영유권 분쟁으로 안보에 대한 요구가 커졌다. 이에 따라 새 미일 방위협력지침에 중국을 겨냥한 내용이 포함됐다. 그러나 더 큰 다른 고려들도 있다. 아베 총리가 추구하고 있는 것은 일본을 소위 ‘정상국가’로 이끄는 것이다. 법률과 헌법에 규정된 군대(자위대)에 대한 제한을 풀고 싶어한다. 중일 관계의 긴장도 이와 관련돼 있다. 아베 총리는 ‘정상국가’로 가고 싶은데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에 반대한다. 중국과 갈등이 커지면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된다. 실제로 중국과 긴장이 고조된 뒤 일본에서 ‘정상국가’에 대한 목소리가 더 커졌다. 중국을 겨냥한 부분도 있긴 하지만 이 부분이 더 크다고 본다. 미일 모두 국내 정치 변화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과거 미일 동맹은 일본 영토가 공격을 받을 때 미국이 일본을 돕는 것이었다. 미국이 공격을 받을 때 일본이 미국을 돕는 건 고려에 없었다. 일본은 원래 법률과 헌법상 국제 사회에서 유엔평화유지군이나 연합군사작전 등에 군대를 파견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이젠 가능하다. 미국은 이제 일본이 더 많은 역할을 해 주길 원한다. 전엔 미국이 일본에 원한 건 자금이었으나 이젠 군대까지 파병하길 바란다. 걸프전 이후로 일본에선 돈을 내는데도 좋은 소릴 못 듣는 데에 대한 불만이 높아졌다. 미국에서도 일본은 돈만 내고 미국만 피를 흘리는 것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
_미국과 일본이 연대해 중국을 봉쇄하려 한다는 분석이 많다.
“국제 정세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사실 미국이 정말 원하는 것은 중국과의 협력이다. 미국은 중국과 대립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중국과 대립할 경우 미국은 수많은 자원을 허비해야 한다. 수많은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중국과 관련된 미국의 이익도 적잖다. 이러한 이익을 지켜야 한다. 미국 입장에서 가장 좋은 건 중국을 잘 설득해 미국에 협력하도록 하는 것이다. 현 국제 질서를 지키고 미국의 부담을 줄이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과 희망은 다를 수 있다. 미국은 중국이 미국의 지위에 도전할 수도 있다고 보고 이를 걱정한다. 따라서 미국은 만일에 대한 방비도 해야 한다. 일본은 물론 한국을 포함해 베트남 필리핀 등과 관계를 강화하는 것도 이런 차원이다. 미국 스스로도 중국을 봉쇄하려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미국은 중국과 더 많이 협력하고 접촉하며 함께 국제 질서를 지키길 원한다.”
_최근 시 주석과 아베 총리가 만났다. 지난해 11월 첫 회담 시 화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던 시 주석이 이번엔 엷은 미소까지 내비쳤다. 일본에 대한 중국의 입장이 바뀐 것인가.
“전체적으로 볼 때 일본에 대한 중국의 정책에 큰 변화는 없다. 중국은 항상 일본이 역사를 직시하고 동중국해와 댜오위다오 문제를 중국과 잘 관리하길 원한다. 이 경우 다른 방면의 중일 관계엔 영향이 없을 것이다. 몇 년 간 이 부분에서 큰 문제가 있었다. 양측은 협력이 없었다. 지난 번 만남과 이번 만남은 다소 차이가 있다. 지난번 만남은 교착 국면을 타개했다는 데 의미가 있었다. 지난번은 양국이 갈등을 겪은 직후 이뤄진 것으로 특수한 만남이었다. 사진에 나타난 표정은 다소 과장된 것이다. 당시 시 주석은 대국적인 관점에서 일본과 만난 것이지 일본과 쉽게 타협하기 위해 만나는 게 아니란 신호를 국민에게 전달하길 원했다. 개인적으로 만나는 게 아니라 국가의 장기적 이익과 긴장 완화를 위해 만난 것이란 걸 보여줘야 했다. 이번 만남은 두 번째 이뤄진 것이다. 댜오위다오 문제에서 일본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양국은 이미 지난해 만남 직전 4대 공동인식에서 댜오위다오 문제를 잘 관리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이건 하나의 진보다. 역사 문제에서도 아베 총리가 이번엔 야스쿠니(靖國)신사까지 가진 않았다. 중일 관계를 고려한 것으로 볼 수 있다.”
_박근혜 대통령은 아베 총리를 만나지 않고 있다.
“한일 관계는 한국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처리할 문제다. 물론 한국과 중국은 서로 협력해야 한다. 문제를 더 잘 처리할 수 있다. 한중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_한중이 서로 공조해야 하는 상황인데 시 주석은 먼저 아베 총리를 만났다.
“시 주석이 아베 총리를 만날 것이란 사실은 중국이 미리 한국에 통보한 것으로 안다. 한국은 사전에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한중 사이에는 교류와 접촉이 많다. 중국이 국제적인 관심사인 시 주석과 아베 총리의 만남을 한국에 미리 알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한국민의 정서를 안다. 그러나 한국이 일본과 만나길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중국도 일본을 만나면 안 된다는 논리는 성립할 수 없다. 각국은 각국의 판단에 따라 상대국 정상을 만나야 할 지 안 만나야 할 지 결정한다. 한국은 아직 한일 정상회담을 준비하지 않고 있다. 박 대통령도 그럴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정책이 바뀌고 분위기가 성숙되면 한일 정상도 만날 것이라고 본다.”
_아베 총리는 미국 상하원 연설에서 군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아베 총리와 그 주변 사람들은 일본이 한국에 사과하는 것은 소용이 없다고 보고 있다. 중국에도 마찬가지이다. 일본은 이미 한국에 사과한 적이 있다. 당시 중국은 일본에 한국에 사과한 방식대로 똑같이 중국에도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일본은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일본은 이미 사과를 했는데 왜 계속 사과를 하라고 하느냐고 불만이다. 그래서 사과를 해 봤자 소용이 없다고 느낀다. 일본의 주장도 일리는 있다.”
_아시아 정세가 소용돌이치며 미국과 전통적 관계를 강화해야 할 지, 중국과의 협력에 더 신경을 써야 할 지 고민하는 한국 내 시각도 있다.
“한국만의 고민이 아니다. 호주 등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미중 관계의 대립과 충돌을 지나치게 과장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미중 관계는 매우 복잡하다. 양국 사이에는 수많은 분야의 협력이 이뤄지고 있다. 간단히 한 마디로 어떤 관계라고 규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미중 관계는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관계다. 한국을 비롯 아시아 국가는 이러한 미중 관계의 복잡성에 대해 충분하게 이해해야 한다. 미중 관계는 사람들의 상상 이상으로 매우 밀접하다. 그러나 모순도 적잖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어느 한쪽을 선택할 필요는 없다. 미중 모두 한국에게 어느 한쪽을 선택할 것을 강요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사안별로 문제가 무엇인지 본 뒤 어디가 맞고 잘못된 것인지에 따라 또 옳고 그른 지에 따라 그리고 스스로의 이익이 어디에 있는 지에 따라 판단하면 된다. 어느 한쪽을 선택, 전부 한쪽하고만 함께 하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국제 관계는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다.”
_9월 중국에서 열릴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기념식에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참석할 것으로 보는가.
“중국은 초대했다. 아베 총리도 초대했다. 현재 북중 간 고위층 교류는 없지만 북중 간 왕래는 있다. 어느 순간 갑자기 북중간 관계가 회복될 수도 있다. 김 제1위원장이나 아베 총리의 방중 여부는 마지막 순간 결정될 것으로 본다.”
글 사진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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