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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칼 한 칼… 땀으로 새긴 동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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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칼 한 칼… 땀으로 새긴 동판화

입력
2015.05.05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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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조틴트 대가 황규백 회고전

“아름다운 그림이 화면에 신비롭게 피어나고 있는 광경을 상상하면 절로 신이 나서 작품을 만들게 됩니다. 그걸 생각하면 메조틴트가 결코 어렵지 않아요.”

경기 과천시 막계동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회고전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열고 있는 판화가 황규백(83)은 기세 등등했다. 그가 1970년부터 30년간 매진해 온 메조틴트는 동판화 기법 중에서도 가장 어렵다. 부식액을 쓰는 다른 동판화와 달리 판을 직접 긁어내야 한다. 물감을 바른 후 닦아내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려 체력적으로도 부담이 크다. 더구나 황규백의 작품은 보통 검은색 배경을 쓰는 메조틴트와 달리 회색 배경을 활용하기에 판을 더욱 열심히 긁어내야 한다.

전통의 기와지붕과 그 아래 핀 흰색·분홍색 꽃이 시적이다. 황규백은 "꽃은 아름답지만 너무 많으면 번잡하다"고 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전통의 기와지붕과 그 아래 핀 흰색·분홍색 꽃이 시적이다. 황규백은 "꽃은 아름답지만 너무 많으면 번잡하다"고 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황규백은 메조틴트가 자신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을 위해 꼭 필요한 기법이었다고 했다. 그의 메조틴트 판화는 파스텔이나 색연필로 그렸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부드럽다. 흰색 수건이 가벼운 바람에 나부끼며 주름진 모양, 우산 두 자루가 벽에 기대며 만든 그림자, 검은 기와지붕 처마 아래 부드럽게 퍼진 그늘. 이 모든 것이 붓으로 그린 그림이 아니라 섬세한 판각의 결과물이라는 게 놀라울 정도다. 판화 ‘토끼와 거북이’가 1983년 사라예보 동계올림픽 포스터로 선정되는 등 서구에서도 사랑을 받았다.

황규백은 "잔디 위 흰 손수건"은 메조틴트로 구현하고자 하는 아름다움과 딱 맞아떨어졌다"고 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황규백은 "잔디 위 흰 손수건"은 메조틴트로 구현하고자 하는 아름다움과 딱 맞아떨어졌다"고 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그가 판화를 시작한 것은 우연이었다. 1968년 무작정 찾아간 프랑스 파리에서 마침 유행하던 동판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동판화보다 더 정밀한 판화를 원했고 그렇게 메조틴트를 택했다. 섬세하고 품 드는 작업을 지속하면서 황규백은 최소한으로 절제된 정물과 풍경을 대상으로 삼았다. 그의 판화 한 장에 들어가는 동판은 많아야 4~5판이고, 다른 색끼리 만나는 부분만 없다면 한 판에 여러 색을 칠하기도 한다. ‘경제적’으로 만든 그의 판화는 미국 브루클린 미술관 큐레이터 조 밀러로부터 ‘시적인 구도’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 전시에는 판화와 유화가 총망라됐다. 2000년 힘에 부쳐 붓을 잡았던 시기의 유화들은 메조틴트 판화에 비해 등장하는 정물의 수가 많고 화려하지만 관조적인 느낌은 그대로다. 그는 “좋은 예술은 영혼을 맑게 해 준다”고 되새기며 “앞으로도 오래 기억에 남는 작품을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전시 7월 5일까지. (02)2188-6000

인현우기자 inhy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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