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 가정 아이들 갈 곳 없어
휴일 못 즐기고 입시 수업 내몰려
서울 대치동 C학원은 이달 1일부터 고교생들을 대상으로 ‘초단기 영어 소수 정예반’을 운영했다. 학교가 단기방학으로 최장 10일 가량 쉬는 데 따른 것이다. 오전 9시30분부터 3시간씩 3일 과정이며, 비용은 32만원. 학원 관계자는 “모든 반이 마감될 정도로 학생들이 몰렸다”며 “6일부터 새로운 반을 개설하는데 이 역시 마감 직전”이라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의 초등학교 3학년 김모군은 단기방학으로 학교가 쉬었던 지난 1일 어머니(40)의 친구 집에서 지내야 했다. 맞벌이를 하는 김군의 부모는 모두 출근해야 했는데, 아이를 맡길 곳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머니 이씨는 “아이가 오전에는 친구 집에서, 오후에는 학원에서 시간을 보냈다”며 “단기방학이 아이와 함께 쉬라는 취지라지만 맞벌이 부부한테는 남의 나라 이야기”라고 불만을 드러냈다.
5일 어린이날을 맞아 교육부와 문화체육관광부는 ‘관광 활성화’와 ‘학생 휴식’을 위해 올해 처음 ‘단기 방학제’를 실시하도록 했지만 휴일을 즐겨야 할 학생들은 오히려 입시 부담 등으로 학원에서 ‘열공’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대치동 D수학학원은 이 기간 동안 고교생을 위해 ‘논술 대비반’ 등 28개 단기 특강을 마련했다. 다른 학원들도 중학생을 위한 ‘과학고ㆍ영재학교 특별반’, ‘서울대 의대 진학반’ 등의 강의들을 줄줄이 개설했다. 서울 송파고의 고교 1학년 학부모 이모(42)씨는 “열흘이면 미적분을 떼거나 영어 문법을 정리할 수 있다” 며 “대부분의 부모들이 입시에 대한 부담 때문에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딱히 갈 곳이 없는 맞벌이 가정의 아이들도 대부분 학원으로 향했다. 맞벌이를 하는 이모씨는 “학교의 돌봄교실은 원래 다니던 학생들만 받았고, 초등학교 3학년 아이를 위험하게 도서관에 혼자 둘 수도 없어 결국 학원을 보냈다”고 말했다.
단기 방학을 보내는 방법도 경제력에 따라 달랐다. 서울 용산구의 한 주상복합아파트 주민들은 초등학생 자녀가 있는 부모들을 대상으로 수강생을 모아 ‘서양 역사로 배우는 미술 특강’ 등 수십만원이 드는 ‘체험 학습’강의를 열었다. 반면 초등학교 1학년 자녀를 둔 서울 구로구의 이모(39)씨는 “아이가 학원에 다니지 않아 집에서 TV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단기방학 중 학생들이 학원으로 쏠리지 않도록 학원들에게 자율 휴업을 권하는 등 동참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 학원 관계자는 “학원들은 아이에게 신경 쓰고 있다는 메시지를 학부모들에게 줘야 한다”며 “학교처럼 단기 방학에 돌입할 만큼 배짱 있는 학원들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한 교육관계자는 “일부 학교는 석가탄신일인 이달 25일을 전후해 또 단기방학을 실시하는 만큼 교육부가 이 기간 중 돌봄교실ㆍ방과후 프로그램을 확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k.co.kr
양진하기자 real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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