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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삶 박수근, 그림이 된 이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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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삶 박수근, 그림이 된 이웃들

입력
2015.05.04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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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50주기 전시 잇달아

서울 창신동 집 근처 DDP선

경매 최고가 '빨래터' 등 대표작,

고향 양구군에선 8월 말까지

초기 작품과 삽화 등 전시

박수근의 작품 '나무와 두 여인'은 1950년대 마을 풍경을 박수근 특유의 거친 표면 위에 그려내 동양적 미감을 느끼게 한다. 서울디자인재단 제공
박수근의 작품 '나무와 두 여인'은 1950년대 마을 풍경을 박수근 특유의 거친 표면 위에 그려내 동양적 미감을 느끼게 한다. 서울디자인재단 제공

암갈색의 울퉁불퉁한 표면. 간결하게 그은 두꺼운 테두리선. 벌거벗은 겨울 나무 아래를 지나는 아이를 업은 여인과 머리에 바구니를 이고 가는 여인. 박수근의 유명한 유화 ‘나무와 두 여인’에서 두 여성을 굽어보는 나무는 어려움 속에서 꿋꿋이 살아남은 한국인에 대한 작가의 애정을 보여준다. 곤궁한 생활에서 예술혼을 불태웠던 작가 자신이기도 하다.

가장 독창적인 기법으로 서민의 삶을 그려낸 서양화가 박수근(1914~1965). 6일 50주기를 맞은 그의 작품들이 그가 머물던 서울과 고향 강원 양구군에서 대거 전시된다. ‘나무와 두 여인’을 비롯한 대표작들은 6월 28일까지 서울 신당동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이간수문전시장(02-2153-0000)에서 열리는 ‘국민화가 박수근’전에서 만날 수 있다. 2007년 45억2,000만원에 낙찰돼 한국화 경매 최고 가격을 갱신한 ‘빨래터’도 있다. 하지만 그 가격만큼의 화려함은 없고, 소박함과 보편성이 매력이다. 얼굴 표정이나 옷차림의 세부적인 표현을 생략한 채 단순하게 묘사한 빨래터 사람들은 1950년대를 살았던 그 누구라도 될 수 있는, 가난했던 한국의 풍경이다.

아들인 서양화가 박성남이 전한 ‘박수근 어록’에 의하면 박수근은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리기 위해 “가정에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어린아이들의 이미지”를 그렸다. 맏딸인 박인숙 박수근미술관 명예관장에 따르면 그의 그림의 모델은 가족과 이웃들이다. ‘길 위에서’에 그린 아이 업은 소녀는 막내 아들을 업은 맏딸이었다. ‘기름장수’의 모델은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이웃의 기름장수로, 박수근의 아내가 글을 읽어주면 보답으로 기름 한 통씩 몰래 놓고 가던 순한 사내였다.

박수근이 그린 평범한 사람들은 화강암을 닮은 그만의 마티에르(작품의 질감)에서 더욱 정감 있게 다가온다. 그는 캔버스에 밝은 색과 어두운 색 유화물감을 번갈아 여러 차례 칠하고 물감덩어리를 나이프로 도려내 울퉁불퉁한 표면을 만들었다. 이렇게 말린 표면은 돌의 표면처럼 보인다. 박인숙 명예관장은 “물감이 마를 때까지 기다린 후에 그림을 덧그리기 때문에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 최소 몇 달, 길면 1년이 걸렸다”며 “아버지의 그림에는 묵은 된장 같은 느낌이 난다”고 했다.

양구 박수근미술관에서 8월30일까지 열리는 ‘뿌리 깊은 나무 박수근,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전(033-480-2655)에서는 ‘국민화가 박수근’이 풍기는 강한 매력이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 그 전사(前史)를 알 수 있다. 박수근의 초기 작품과 밑그림, 삽화 등을 통해서다.

박수근은 자신의 작가노트에 “우리나라의 옛 석물 즉 석탑ㆍ석불에서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의 원천을 느끼며 이를 조형화에 도입하려 한다”고 적었다. 이를 위해 시도했던 목판화와 프로타주(울퉁불퉁한 바닥 위에 종이를 얹고 연필로 칠해 무늬가 나타나게 하는 기법)를 이 전시에서 볼 수 있다. 훗날 마티에르 유화를 그리기까지 화강암의 질감을 평면에 구현하려 다양한 방법을 모색했던 박수근의 고민이 드러난다.

이밖에 박수근의 드로잉(밑그림)과 서양미술자료를 스크랩한 공책, 그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상이 전시된다. 특히 섬세하게 그린 삽화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는 1953년 미군의 초상화를 그려주거나 신문ㆍ잡지에 쓸 삽화를 그려 받은 원고료로 생활을 꾸렸다. 창신동 집의 낡은 마루를 재현한 방 안에 서면 소박한 그림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그의 삶을 몸으로 깨닫게 된다. 매주 금요일 오전 10시 DDP에서 박수근미술관까지 가는 셔틀버스가 출발한다.

인현우기자 inhy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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