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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사회적 경제의 정치학

입력
2015.05.04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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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이 공동 출자한 햇빛발전소, ‘돈 되는’ 치료는 가능한 지양한다는 마을치과병원, 사람과 동물이 공동대표인 협동조합형 동물병원, 1인 가구들이 모여 주거 공간을 공유하는 공동주택, 직원 80%가 장애인인 빵 굽는 회사, 그리고 동네마다 갖가지 형태와 색다른 이름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각종 마을기업들. 소설 속에서나 나올만한 이야기들이 아니다. 사회적 경제, 즉 ‘이윤뿐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경제활동’을 영위하는 조직들로서 최근 언론의 주목을 받은 성공 사례들이다.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마을기업, 자활기업, 농어촌 공동체 회사 등 주요 사회적 경제 조직의 규모와 성장 추세 또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가령 2012년 12월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된 후 2년 만에 설립된 협동조합의 수는 6,000여개에 이른다. 아이쿱, 한살림 등 4대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은 올해 매출 1조원 시대를 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007년에 제정된 사회적기업육성법에 따라 고용노동부의 인증을 받은 사회적 기업 수는 2007년 50개에서 2014년 1,251개로, 근로자 수는 2,500여명에서 2만6,000여명으로 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학계에서는 취약계층에 일자리를 제공하고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등 사회적 목적을 민간 수준에서 자발적으로 추구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경제야말로 정부의 재정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복지 및 사회서비스를 확대할 수 있는 최적의 대안이라 평가하기도 한다. 현재 여야 할 것 없이 정치권에서는 사회적 경제 조직에 대한 정부의 통합적 지원을 내용으로 하는 새로운 사회적경제기본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필자는 사회적 경제의 정치학적 측면, 특히 민주적 잠재력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사회적 경제는 민주적 시민정치의 학교 혹은 훈련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 경제 조직은 사업체이자 결사체로서 원칙적으로 이윤보다 회원이나 공동체에 대한 서비스를 우선하고, 자율적 운영과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을 중시하며, 수익의 배분에서 자본보다 사람과 노동을 강조한다.

즉 사회적 경제 조직은 경제성뿐 아니라 자발성, 개방성, 민주성, 참여성, 자율과 독립, 연대와 협동,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 등 민주적 가치와 목표를 추구하며 공적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것이다. 가령 1인 1표의 협동조합 활동 과정에서 생성ㆍ축적되는 이웃과의 협력의 경험, 신뢰와 상호호혜의 규범, 시민적 자치 역량 등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민주적ㆍ공적 가치다. 이러한 점에서 사회적 경제 조직은 이윤추구의 목적과 1주 1표의 원리로 조직된 일반 기업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봤을 때 현재 사회적경제기본법 제정을 둘러싸고 제기되고 있는 보수 진영 일각의 비판은 편협하거나 왜곡되어 있다. 첫 번째로 사회적 경제는 진보 의제며 야당 좋은 일 시켜준다는 주장이다. 심지어 사회적경제기본법이 좌파의 뻐꾸기 알 전략, 즉 사회적 경제 지원 정책이 좌파를 육성하고 지원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고 비판한다.

둘째, 정부의 개입과 지원으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의 근간을 흐트릴 수 있으며 비효율과 정경유착, 지대추구 등의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이는 특정 정파적 시각과 진영 논리에 치우쳐 사회적 경제의 민주적ㆍ공적 역할의 가능성을 못보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여권의 입장에서는 경제민주화의 이름으로 야권 의제를 선점해 중도층을 끌어들일 수 있는 소재가 될 수 있다. 게다가 여당의 강력한 요청으로 사회적 경제 조직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조항이 들어가기로 되어 있기도 하다.

지대추구와 정치적 포퓰리즘 등의 위험은 제도 디자인과 운영의 묘를 살려 풀어나갈 수 있으며 오히려 문제는 단순한 행정적 지원을 넘어 사회적 경제 조직들의 민주적ㆍ공적 가치와 역할을 활성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거버넌스 체제를 구축하는 일일 것이다.

김의영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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