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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쇼이의 전설, 20세기 최고 발레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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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쇼이의 전설, 20세기 최고 발레리나

입력
2015.05.04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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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 플리세츠카야 별세

플리세츠카야가 1996년 당시 70세 나이로 우크라이나 키예프 국립발레극장에서 1인 무용 ‘이사도라 던컨’을 연기하고 있다. 키예프=AP연합뉴스
플리세츠카야가 1996년 당시 70세 나이로 우크라이나 키예프 국립발레극장에서 1인 무용 ‘이사도라 던컨’을 연기하고 있다. 키예프=AP연합뉴스

“그는 우리 시대 최고의 무용가 중 한 사람이었고 이브 생로랑과 피에르 가르뎅의 뮤즈였다.”(영화 ‘백야’ 주인공 미하일 바리시니코프)

20세기 최고 발레리나로 꼽혀온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의 전설적 무용수 마야 플리세츠카야가 2일 독일 뮌헨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89세.

플리세츠카야는 모스크바에서 기술자인 아버지와 영화배우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10살이 채 안 돼 황실 발레학교에서 무용을 시작했다. 아버지의 전근을 따라 모스크바를 떠나기도 했지만 혼자 가족 곁을 벗어나 모스크바에서 무용 연습을 계속했다.

그러나 10대 초반에 집안에 큰 불행이 몰려들었다. 아버지 미하일은 스탈린 정권에 체포돼 총살당했고, 어머니도 ‘인민의 적’의 아내라는 이유로 막내 동생과 함께 노동수용소에 보내졌다가 카자흐스탄으로 추방됐다. 부모 모두 유대인이었던 데다 미국에 가까운 친척이 있다는 게 화근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플리세츠카야는 이후 볼쇼이 발레리나였던 이모에게 맡겨져 발레 훈련을 계속했다.

1943년 볼쇼이 발레단에 입단해 4년 뒤 처음으로 ‘백조의 호수’ 주연을 맡았다. 플리세츠카야는 점프의 높이가 달랐다. 허리 젖히기 역시 유연하고 컸다. 무엇보다 발레 기술이 정확했고 카리스마가 넘쳤다. 1961년 ‘잠자는 숲속의 미녀’ 오로라역을 연기하면서도 이 같은 실력을 유감없이 선보여 최고의 발레리나라는 명성을 얻었다.

젊은 시절부터 발군이었던 그는 얄궂게도 KGB의 전신인 스탈린의 비밀경찰 NKVD 같은 권력층의 유흥 무대에도 자주 서야 했다. 급기야 마오쩌둥 중국 국가주석이 참석한 스탈린의 70주년 생일 축하행사 무대에도 올랐다. 이렇게 실력을 인정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랫동안 비밀경찰의 감시를 받았고 유대인을 배척하는 옛소련 치하에서 1950대 중반까지 해외 공연마저 금지됐다.

73세 나이로 우크라이나 키예프 공연을 마치고 관중에서서 꽃다발을 선사 받고 환하게 웃는 플리세츠카야. 키예프=AP연합뉴스
73세 나이로 우크라이나 키예프 공연을 마치고 관중에서서 꽃다발을 선사 받고 환하게 웃는 플리세츠카야. 키예프=AP연합뉴스

하지만 1959년 첫 서구 공연이 있자 서유럽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듬해 볼쇼이 극장의 프리마 발레리나가 됐고,1967년에는 영화 ‘안나 카레리나’에서 공작 부인을 연기했다. 발레리나 안나 파블로프의 대표작 ‘빈사의 백조’는 플리세츠카야가 특히 호평 받은 작품이다. 20세를 전후한 1940년대 중반 이 작품에 처음 출현한 플리세츠카야는 볼쇼이 솔리스트에서 물러난 65세까지 현역으로 연기하는 기록도 남겼다.

1980년대 이후에는 작곡가인 남편 로디온 셰드린과 함께 로마 오페라 발레단, 마드리드 스페인 국립 발레단의 예술감독을 지냈고 70세 생일에는 프랑스 안무가 모리스 베자르가 안무한 ‘아베 마야’ 초연 무대에도 올랐다. 옛소련의 탄압과 발레 인생을 담은 자서전 ‘싸우는 백조’를 남겼다. 자신의 이름을 딴 마야 플리세츠카야 국제발레 콩쿠르의 심사위원장을 맡아 왔다.

이 콩쿠르 심사위원을 맡아 1997년 영상으로만 본 플리세츠카야를 처음 만났던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은 “(키가)큰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보다도 작아 너무 놀랐던 기억이 난다”며 “그의 카리스마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문 단장은 영상으로만 봐도 “화면을 뚫고 나올 것 같은 힘과 표현력에 압도 당한다”며 “무대에서나 밖에서나 ‘발레리나’ 그 자체였다”고 덧붙였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마야 플리세츠카야 공연 영상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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