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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의 경복궁'도 훼손… 영혼마저 상처 입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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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의 경복궁'도 훼손… 영혼마저 상처 입다

입력
2015.05.04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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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더르바르 광장. 쿠마리 사원과 왕궁 등 다수의 문화유산이 지진으로 파괴됐다. 장재진기자 blanc@hk.co.kr
3일 더르바르 광장. 쿠마리 사원과 왕궁 등 다수의 문화유산이 지진으로 파괴됐다. 장재진기자 blanc@hk.co.kr

네팔 수도 카트만두 시내 중심에 있는 더르바르 광장은 네팔인들에게 ‘영혼의 안식처’다. 우리나라로 치면 경복궁 같은 곳이다. 하지만 대재앙은 광장 일대 문화유산에도 회복 불가능한 상흔을 남겼다. 광장 주변에선 “네팔의 심장이 무너졌다”는 탄식 소리가 가득하다.

4일(현지시간) 기자가 찾아간 더르바르 광장에는 힌두교 사원, 왕궁 건물 곳곳이 지진으로 붕괴돼 한 줌 흙무더기로 변해 버렸다. 사라진 사원 탑 윗동이나 외벽이 무너지면서 드러난 앙상한 건물 뼈대는 지진 피해를 생생하게 웅변하고 있었다. 불과 2주 전만해도 관광객들의 발길로 붐볐을 광장에는 군인들만 남아 곡괭이, 삽 등 장비를 들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더르바르’는 왕궁을 뜻하며, 왕정시대 쓰였던 옛 왕궁을 중심으로 형성된 건축물을 통칭해 더르바르 광장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이곳은 네팔이 군주제를 유지했던 2007년까지 왕궁 역할을 했던 곳이다. 이 곳에는 국왕이 즉위식을 가졌던 나살초크를 포함해 네팔의 수호 여신이 모셔진 탈레주 사원, 하누만(원숭이 신) 동상 등 12~18세기에 세워진 탑과 사원들이 즐비하다. 모두 역사적으로나 미술사적으로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있다. 게다가 광장에는 탈레주 여신이 인간으로 현신했다고 여겨지는 살아있는 신 쿠마리가 거주하는 사원도 있어 네팔인에게 성지(聖地) 중 성지로 꼽힌다.

유네스코는 앞서 27일 “이번 대지진으로 카트만두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7곳 가운데 4곳이 심각하게 훼손됐다”고 발표했다. 이곳 바산타푸르의 더르바르 광장을 비롯해 바크타푸르의 더르바르 광장, 파탄의 더르바르 광장, 보드나트의 불탑이 여기에 해당한다.

네팔지진 9일째인 3일 오후(현지시각) 네팔 박타푸르 더르바르 광장의 유적지가 지진으로 인해 붕괴되어 있다. 뉴시스
네팔지진 9일째인 3일 오후(현지시각) 네팔 박타푸르 더르바르 광장의 유적지가 지진으로 인해 붕괴되어 있다. 뉴시스

전문가들은 참사의 여파가 너무 커 국보급 문화유산이 완전히 복원될 가능성을 낮게 점치고 있다. 이곳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카트만두를 대표하는 61m 높이의 건축물 다라하라 타워(1832년 건립)만 해도 저층부 10m만을 남겨둔 채 산산조각이 났다. 네팔 정부는 더르바르 광장을 복구하기 위해 군 병력 200여명을 긴급 동원, 수습에 나섰지만 잔해를 치우는 데만 한 달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국가의 보물을 하루 아침에 잃어버린 주민들은 슬픈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라전 타파(17)군은 “지진이 일어 났을 때 탑이 흔들리고 굉음과 함께 무너지는 것을 눈앞에서 지켜봤다. 네팔인에게 매우 중요한 곳이라 먹먹하다”고 안타까워했다. 쏘놈 싸캬(38)씨도 “태어나서부터 봐 왔던 왕궁이 무너졌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며 “쿠마리가 다치지는 않았는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네팔인은 눈길만 스쳐도 축복을 받는다고 믿을 정도로 쿠마리에게 맹목적인 지지를 보낸다. 더르바르 광장에서 복구 작업 중인 군 관계자는 “쿠마리는 다른 건물로 피신했고 무사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다행히 쿠마리 사원은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대지진은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영업을 했던 인근 상인들의 생계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광장 앞에서 4년째 식료품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쁘렘 버즈라 짜르여(41)씨는 “문화유산이 파괴된 것도 마음이 아프지만 당장 장사가 안 돼 힘들다”며 “10년이 걸릴지, 20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어서 빨리 복원되길 빌 뿐”이라고 푸념했다.

카트만두(네팔)=글ㆍ사진 장재진기자 blanc@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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