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 껍질을 벗기며' 국내 출간
자전소설 '암실 이야기'도
17세에 징집돼 복무 상세 기술
조국 독일의 과오 비판했던
스스로에 날카로운 칼날 들이대
“나는 불명예에 대하여 그리고 그 뒤를 절룩거리며 따라오는 부끄러움에 대하여 기록하기로 한다.”
지난달 작고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귄터 그라스의 자서전 ‘양파 껍질을 벗기며’(민음사)가 출간됐다. 2006년 독일 출간 당시, 나치군 복무 사실을 처음으로 공개해 세계적으로 파란을 일으켰던 책이다. 그라스는 책을 내기 나흘 전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과의 인터뷰에서 그 사실을 미리 밝혔고, 해당 언론은 ‘귄터 그라스: 나는 무장 친위대 대원이었다’라는 제목으로 이를 대서특필했다. 독일의 양심이자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폭탄 고백에 독일을 비롯한 전 세계가 비난 여론으로 들끓었지만, 그라스는 그에 일일이 대응하는 대신 이 책으로 모든 답변을 대신했다.
작가는 책에서 2차대전 당시 17세 고등학생이었던 자신이 히틀러의 나치 친위대에 징집돼 복무한 사실을 상세히 기술한다. 당시 기록이 일체 남아 있지 않다는 점에서, 그에게 고백을 강제한 유일한 이가 작가 자신이었음을 알 수 있다. 작가는 조국의 과오를 향해 들이댔던 칼날을 더욱 날카롭게 벼려 스스로에게 들이댄다.
“이제 온정적인 형용사는 허락되지 않는다. 내 행동을 어린 시절의 어리석음으로 축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위로부터의 어떠한 강요도 내 목덜미를 누르지 않았다.”
무장 친위대를 엘리트부대로 여기고 동경한 것부터 이중 루네 문자(나치 친위대를 뜻하는 SS)를 불쾌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 순간순간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게 분명한 호승(好勝)의 심리와 치기까지, 작가는 스스로의 내면을 쥐 잡듯이 뒤져 꺼내 놓는다. 그리고 설령 이 모든 과오가 무지의 소산이었다 하더라도 그 무지야말로 죄라며 자신을 향한 변호까지 미리 사양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간헐적으로 사태를 알아차렸고, 수시로 멈칫거리며 고백했다. 무지해서 혹은 더 정확히 말해, 알려고 하지 않으면서 나는 범죄에 가담했던 것이다.”
그라스가 남긴 유산이 독일을 전범국가에서 ‘과거사 정리의 모범사례’로 변화시킨 오늘날, 작가의 잘잘못을 따지는 건 유효기간이 한참 지난 일이다. 오히려 유효한 건 작가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다. “왜 묻지 않았던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날카로워지는 이 질문은 개인과 집단, 국가 속으로 파고들어 동일한 질문을 무한히 재생산하고 있다. 나는 왜 묻지 않는가. 우리는 왜 묻지 않는가.
‘양파 껍질을 벗기며’의 출간에 맞물려 후속 격인 자전소설 ‘암실 이야기’도 번역돼 나왔다. 민음사는 구스틀로프호 침몰 사건을 다룬 ‘게걸음으로’도 조만간 재출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독일판 타이타닉’이라 불리는 1945년 구스틀로프호 침몰은 독일 피난민 9,000여명을 태운 배가 러시아발 어뢰를 맞고 침몰한 일로, 그라스는 당시 독일 문단의 금기였던 이 사건을 집중 조명해 또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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